"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면 안 되는 겁니다"
기자 8년 차, 기사 쓰기와 글쓰기는 다르다고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내 경우 미디어 비평지에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꼭 틀에 박힌 기사를 쓸 필요는 없는 환경이며, 종종 영화 리뷰라든가 개인적 의견이 들어간 비평을 쓰곤 해서 그 간극이 그리 멀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미디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글이라든가 '기사감'이 안 되는 주제에 대해 기사를 쓸 수는 없으니 간극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기사이기 때문에 취재가 없는 에세이류 글쓰기는 쓰지 않는다.
앞서 말한 조건들 때문에 내가 생각한 글쓰기를 아예 기사에 못 넣는 정도는 아니어서, 그 경계가 애매했다. 글쓰기 의욕도 기사를 쓰고 오면 사라지곤 했다.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왔는데 집에 와서 노트북을 또 켜는 것 자체가 고역일 때도 있었다. '덕업 일치'하는 환경일 수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가 무엇인지 모르게 됐다는 점에서 고민이 들었다.
나는 이제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건가?
그래도 여전히 샤워 중 떠올랐던 생각이나 길을 걷다가 떠오른 생각들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 않고 쓰며, 제목과 부제를 내가 짓고, 어느 때나 글을 수정하고도 싶었다. 기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니 글쓰기를 좋아했던 20대가 떠올랐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여전하다고 해서 20대의 나와 30대의 내가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치관이나 취향, 삶의 방향 모두 바뀌었다. 대학을 들어가서 한번, 기자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한번, 기자가 된 후 한번, 결혼을 한 후 한 번쯤 생각이 바뀌었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은 '정민경' 시즌5 정도다.
기자를 하겠다고 생각한 후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썼는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변화는 어쩌면 나에게 직업을 갖게 해 준 고마운 터닝포인트다. 3학년 때 들었던 한 교양 수업이야기다.
대학을 들어간 후 기자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건 3학년 때쯤이었다. 그전까지는 잡지 기자를 꿈꿨는데 신문 기자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하고 있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교에서 그나마 가까웠고 당시 입사를 희망했던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언론사 준비를 위해 필수인 다음 카페 '아랑'에 가입해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스터디도 시작했다. 대학 교양수업으로 글쓰기 스킬을 가르쳐준다고 유명했던, '문학과 사랑'이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그 수업은 사랑에 대한 유명 텍스트를 읽고 한주에 한 개씩 독후감을 쓰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랑에 관심도 많았고 글쓰기도 배우고 싶었으니 딱이었다. 글이라고는 일기 외에는 끄적거려본 적 없었지만 나름 독서량은 자신 있었기에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종종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자기가 글을 잘 쓰는 줄 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밥 먹기와 요리하기처럼 완전히 다른 일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니면 요리에 도움이 되지만,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고 요리가 저절로 느는 건 아니다. 독서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수업에서 매주 글을 썼지만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것은 학기 중 딱 한 번이었다. 내 차례는 사드의 '규방 철학'이었다. 사드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사디즘의 시초가 된, 가학적인 취향의 사랑(?)을 만들어낸 철학자로 그의 책은 폭력적인 묘사와 유쾌하게 읽지 못할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한테 이걸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선생님도 참 독특하다 싶다. 나도 전공이 나름 프랑스 문학이긴 했고 전공 수업 때도 사드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 있었으니 당시엔 꽤나 자신만만했다.
문제는 내가 당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두 번째 전공으로는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꼴에 어려운 철학책들을 하루 종일 읽고 있었던 때였다는 점이다.
내가 읽는 철학책처럼 글을 써갔다. 결과는 뻔했다. 그 선생님은 나를 아주 혼쭐 내줄 모양이었던 것 같다.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이 글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민경 씨는 자신이 쓴 글을 이해하나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창피해서 일단 "네"라고 말했다.
보통 이 정도면 넘어갈 만 한데 선생님은 "그럼 2페이지의 '~'라는 문장은 무슨 말이지요?"라고 물었고 나는 결국 몇 마디를 씨부리다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신이 나셔서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면 안 되는 겁니다"라고 가르쳤다. 내 글은 마치 '최악의 글' 샘플에 뽑힌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내 뒤로 한 명의 발표자가 더 있었다. 그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아까 정민경 학생의 글과 이 학생의 글 중 누구 글이 더 좋은가요?"라고 투표를 붙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잔인하신 그 선생님의 의도에 따라 학생들은 다른 글에 투표했다. 진짜 고맙게 내 글이 좋다는 학생이 딱 한 명 손을 들어줬는데 내가 불쌍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날 눈물을 꾹 참고 집에 가서 울었다.
그래도 내가 대견한 건 그 다음 수업에도 잘 참석해서 계속 글을 써갔다는 점이다. 해당 수업은 대학 친구들과 상관없이 나 혼자 신청한 수업이었다. 수업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창피함이 덜해서 다행이었다.
또한 선생님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고 당시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 다음 글은 정말 잘 써서, 날 호되게 혼낸 선생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평상시에도 많이 생각하는 거지만 내 장점은 남의 말을 골똘히 생각해보고 그게 맞는 말이면 인정을 잘하고 그 말을 해준 대상을 잘 따른다는 점이다. 그때도 그랬다.
마지막 수업은 모든 수업을 듣고 감상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숙제였다. 지금 브런치에 쓴 이 글과 비슷한 글을 써서 제출했다. 그날 정말 창피했지만,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글을 쓰지 않는 계기가 됐고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른 글을 쓰고 있지 않냐고 질문하는 글을 제출했다.
학기말 해당 수업에서 A+를 받았다. 선생님 역시 수치심을 느끼고도 배움을 얻어간 학생을 칭찬해주신 셈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아직도 그 선생님의 성함이 기억난다.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아주 중요한 태도 하나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