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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현 Jul 22. 2024

징했던 살림배우기

나는 30대가 되기 전까지 살림의 한 획도 몰랐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엄마가 살림을 가르치지도 내가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손에 물 묻히면 그 대로 평생 시집살이가 심해진다며 커리어 우먼이 되어 시댁의 보살핌을 받으라는 생각이여서란다. 엄마의 선경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고 병을 얻어서 시댁의 보살핌을 받는 건 불발이 되었다.

그래서 난 2010년부터 엄마에게 살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하는 거랑, 집에서 하는 거랑 차이가 있을 거 같아서 맨처음에 멍 때렸다.

“이거 어떻게 해?”

“얘야, 학교에서 한 거랑 별 반 차이가 없어. 왜 걸레를 못 빨아??”

다를 줄 알았다. 학교는 걸레가 막대기에 붙은 대걸레지, 손걸레는 아니였다. 그래서 손걸레 빠는 법부터 배웠다. 정말 엄마가 지금 돌아보면 엄마가 고생이 많으셨다. 아무것도 모른 딸을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만드느냐고 말이다.

우리집의 모토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이다. 어느 성경의 경구 같은 데 기독교랑 무관하다. 아니, 성경을 아는 건 잠깐이나마 교회를 다녔다는 증거이기도 하네. 암튼 우리는 무교다. 이런 모토로 정말 우리집의 대장이신 엄마가 실천에 옮기신다.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고 띵가띵가 하면 그날의 식사는 없다. 밥 축내는 건 못 보겠다는 거다. 사실 정신질환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엄마가 

“사지 멀쩡한 게 집에서 놀려고 그래. 살림이나 배워서 엄마 대신해라. 엄마 힘들다.”

고 하셨다. 그래서 잘 회전이 안되는 머리로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 뒤 돌아보니 징했다. 엄마가 스매싱을 내리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참으셨다. 

그 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요리였다. 맨 처음에 엄마 요리하는 거 옆에서 먼저 지켜 보란다. 그리고 각 조미료들의 이름을 알게 심부름을 떨어진 조미료를 사오라고 시키시며 일일이 간장, 식초등등을 어떤 브랜드가 가족의 입맛에 맞는지 알려주셨다. 2주 엄마가 요리하는 걸 지켜 보게 하고나서 지금 먹는 일상적인 레시피를 적으라고 하셨다. 엄마표 레시피가 만들어 진다. 엄마가 어떻게 하는 지 보여주면서 방법을 입으로 일러주면 내가 받아 적고 궁금한 점이 생기면 물으면 역정 내지 않고 잘 가르쳐 주셨다.

레시피를 보며 음식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엄마가 당연히 옆에서 코치를 하셨다. 그리고적은 레시피는 전부 외우라고 하셨다. 외워서 해야 일이 빨리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레시피 암기공부를 따로 했다. 그러면서 엄마 옆에 세워두고 나 혼자 해 보기도 했다. 당연히 엄마 맘에 들지 않긴 했다. 엄마가 ‘대강’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오지 않아서다. ‘대강’,’한 줌’, ‘한 꼬집’….. 이런 표현이 어색했다. 무엇보다 측량없이 눈대중으로 간을 맞추는 데 여기서 비밀이 나온다. ‘간을 보라’다. 대강 넣고 맛을 보면서 조미료나 재료를 뭘 더 첨가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서 맛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래서 ‘대~충’ 해도 요리가 맛있어 진다는 거다.

이렇게 요리를 엄마 보조로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요리 배운 지 언 10년이 되었을 때, 엄마가 아예 주방을 나가셨다.

“어디 혼자서 해 보라. 이제 혼자서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2010년부터 처음 배우기 시작한 요리를 2019년에 시험대에 올랐다. 혼자서 주방을 차지해서 했다. 간간히 엄마가 왔다 갔다 했지만 좀 늘어놓고 하니까 눈에 거슬린다고 치워주고 싶은 맘을 억누르고 거실로 향하셨다.

한 번 생각하고 칼 잡고 뚜걱뚜걱 재료 손질을 한다.-지금도 칼질을 못한다.- 조미료를 넣고 버무리거나 볶는다. 그래서 첫 완성이 된장 찌개였다. 된장이 맛나면 되지만 된장도 비율을 어느정도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완전 주로 여자들이 하는 이 요리가 완전 과학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머리가 좋은 듯하다. 매일 수학과 과학을 공식적인 숫자로 적지 않을 뿐이지 요리라는 과학을 풀어야 하니까 말이다.

벌써 하산한지 5년이 되었다. 왠만한 요리는 다 한다. 가끔 특식으로 먹어본 적이 없는 것도 레시피 찾아서 따라 해 보기도 한다. 20대때, 30대때는 레시피의 계량을 볼 줄도 몰라서 까막눈이였지만 이도 엄마에게 요리책 보는 법을 배웠다. 엄마도 대단하지만 쏙쏙가르치는 걸 잘 빨아들이는 나도 대단하다.

이렇게 해서 난 살림꾼이 되어간다. 아직 엄마 눈에는 아기 살림꾼이지만 이제 앞으로 내가 해야 하니까. 이제 잔소리도 줄었다. 잘 한다고 말이다. 단지 난 몰아서 하고, 엄마는 눈에 보일 때마다 그때 바로 하는 습관이 달라서 좀 마찰이 있긴 하다.

나의 살림 배우기는 정말 고생스러웠지만 성취는 빛났으니 앞으로의 나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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