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등록금을 내고 8월 둘째주에 수강신청을 하는 데 여전히 눈치싸움과 몸싸움은 여전했다. 수강신청을 하는 기간동안 학교의 공대에 가서 수강신청 하는 소수의 컴퓨터에 내가 정한 수강시간표에 따라 강의를 입력하는 데 하는 건 순식간이지만 언제 서버가 다운되어 내 수강신청을 놓칠 지 모를 위기감도 느꼈다. 사실 실제 잠시 서버가 버벅대어 다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쫄깃한 긴장감이란! 단지 몸을 서로 부대끼며 약간의 몸싸움이 있어서 참……. 이게 맘에 들지 않았다. 새 학기에 또 새 복학생과 동기들 만날 생각에 두려움반 설렘 반이였다. 벌써 동기 중에 중도 하차를 한 동기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적성에 맞지 않다…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서 재수 할 거다… 반수한다…. 그런다. 나와 어울렸던 동기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더불어 복학생들, 군대 휴학으로, 그냥 휴학하고 온 남녀 선배들이 제법 포진해 있었다. 사실 다음 2학년때 복학해도 될 거 같은 데 아마 계산 상 1학년 2학기가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나도 재수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들 관두는 데 괜히 뒤쳐지는 거 같네.’
다들 인서울을 하려고 안간힘이였다. 그렇다 나는 지방대다. 서울에 가면 천대?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동기들은 서울 사람이거나 가까운 경기도민이였다. 즉, 수도권에 터를 잡은 학생들이라는 말이지. 나는 이 동기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워 나갔다.
교수님들은 그저 나에겐 가르침만 있을 뿐이지 친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여자 교수님에게 엉뚱한 소리를 들었을까. 교양국어수업과 중국어발음수업 여자교수들에게 ‘니가 싫다.’는 소리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로 ‘네 본분이나 잘해.’라고 대담하게 응수를 했다. 나를 언제 안다고 달랑 수업만 듣고 친분 하나 없는 데 그런 소리를 하다니. 이럴 땐 나도 여자지만 한 심해 보인다. 즉, 점수를 주지 않겠다고 둘 다 보복성 멘트를 날렸는 데 실력이 실력인지라 시험을 잘 쳐서 A는 못 맞아도-복학생들에게 줌.- B+은 둘 다 받았다. 내 이름 석자와 학번을 몰라서 시험 잘 봐서 그냥 성적을 제대로 주었다. 재수 없지? 누군지 모르고 이런 말을 하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도 유혹이 많았다. 재수하라고. 불수능이라 점수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으니 다시 한 번 시험을 보면 잘 보고 인서울 할 거라고 말이다. 타대학교를 간 동창이나 같은 학교 입학한 동창, 그리고 이제 다음 학기에 군대 간다고 휴학한 남자 동기까지 유혹을 했다. 당연히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였다. 그래….. 열심히 공부했지만 난이도 실패한 00학년도 수능이 였으니까. 한 해 볼까?
‘근데…. 나 수학 정말 싫고,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그 와 더불어 물리/화학도 다시 봐야 하네? 아…. 싫다. 제일 먼저 찢어 버린게 수학정석인데. 이 셋을 다시 봐야한다고?’
이 생각이 들자 주변의 유혹이 그냥 자신들의 가십거리를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하고 안하고는 내 결정인데 주변에서 너무 흔드니 약간의 이 때 팔랑귀여서 흔들렸다. 슬금 슬금 휴학이 유행처럼 번지려 했다.
한 번 부모님에게 휴학이야기를 꺼냈다.
“휴학해서 뭐할 건데? 수능을 다시 봐? 떼끼! 그런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아. 고생만 하지. 휴학은 안된다. 그냥 제때 졸업해.”
이런 말이 되돌아왔다. 이 때 난 참 순진했다.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뭐라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나중에야 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잘 되었냐고? 내가 훗날 만난 사람들은 실패를 했다. 전적대학보다 더 못난 대학으로 가거나 포기를 해야했다. 난 이런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다 뿌리쳤다. 즉, 남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은 강직함이 있었다. 다른 말로 주관이 뚜렷하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다음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교재도 사서 다음 학기 준비를 조금 했다. 난 예습보다는 복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예습으로 훑어본다는 식으로 쫘르륵 그냥 훑었다. 아, 이런 걸 다음 학기에 배우겠구나…..
그래서 2학기 때는 좀 더 열심히 할 생각일랑 사실 없었다. 고교 때 대학 1년은 놀거라고 다짐의 결심을 해서 그대로 실천 중이였기 때문이다. 나도 내자신이 무서운 게 있다. 한 번 결심한 말은 무조건 지킨다는 거다. 놀려 했으니 1년은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수강신청은 또 잘난 척하며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을 적절히 섞었다. 또 나중에 과 배정을 받고 나서 들은 이야기 인데 다 교양과목으로 학점을 채워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말이였다. 이 때 내가 참 잘났다는 병에 걸려서 콧대 높게 고개를 뻣뻣히 들고 다녔다는 거다. 어울리지는 못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가짐이 그랬다고. 친구라는 여자친구들에게는 휘둘린 감도 없지 않지만.-난 정중하게 대하는 데 내 겉모습이 부드럽고 순진해 보여서 갖고 놀 장난감 쯤으로 본 거 같다.-
이렇게 여름 방학이 서울나들이를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