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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by 김솔현


벌써 1학년이 다 끝나갔다. 중간고사를 본 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기말고사라니.

흠... 이제 남학생들도 군입대를 위해 입영통지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다양한 급수를 받은 남사친(남자사람친구)들. 그리고 2학년 되기 전에 군입대해야 한다고 휴학을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같이 어울리게 2년을 휴학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가? 근데 이 때 슬금슬금 휴학 열풍이 나타나려했다. 그 열풍은 2학년 올라갔을 때 절정을 달했다. 남학생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도 많이 휴학했다. 학부제니 결국에 자신이 원하는 학과로 배정받지 못해서 그냥 휴학해 버린 거다. 나도 2학년 오를 때 중국학과 보고 온 거였는 데 어처구니 없이 러시아학과에 배정이 되어서 놀랐다. 그래서 이 때 나도 휴학하고 수능을 준비해야 하나 싶었다. 어떤 때는 편입을 준비 해 보라는 유혹도 받았다. 무엇보다 고교 동창들이 내 수능성적을 듣고 한 번 휴학하고 수능 다시 보라고 종용했었다. 바로 반재수라는 걸 하란 거 였다. 그러나 내가 수학/물리/화학을 워낙 못해서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아서 안한다고 했다.


이렇게 기말고사 기간이랬다. 그래서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남학생들의 연이은 휴학을 신청하고 여학생들은 여학생 대로 헤매고 있었다. 난 이런 분위기에서 잘 만 놀았다.

“아직 1년이 다 되려면 멀었으니 오늘도 열심히 놀자~”

근데 나와 놀아 줄 사람은 없었다. 공부에 매진 했다기 보다는 나와 같은 걸을 공유 할 친구가 없었다. 나와 어울린 여자친구들이 도대체 뭐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먹을 거 찾아가서 돌아다니기 바빴다. 나는 음식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관심도 없어서 몇 번 끼다가 말았다. 이유는 내가 술을 전혀 못하고 안주만 많이 먹으니 눈치 보여서. 그래도 남자들은 별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였지만 여자들은 좀 눈치를 주었다., 그래서 적당한 시간에 빠지기도 했다.

기말고사는 도서관에 가지 않고 대학생활 처음으로 내 방에서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잘 되었다. 주변이 조용한 곳이라 더욱 집중이 되었다.

나의 공부법은 그저 열심히 읽어주는 거다. 3회 정도 정독을 한다. 그리고 문제를 만들어 보거나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 그러나 원어민 회화는 생각과 달리 흘러갔다. 여기서는 중국어회화를 들었는데 숙제가 많았다. 1학기 때 못 봤던 시험은 이 번에 집에서 공부 한 덕에 잘 보았다. 내가 시험지에 거의 다 써서 냈다. 100제였는 데 거의 썼다.

“아,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시험을 잘 보겠는 걸?”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고교3학년 때도 하지 않은 4당5락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4-5시간만 자는 건데, 이 땐 집에서 밤을 새어 버렸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친구들과 놀러가는 대범함도 보였다. 동영이라는 남학생이 은지와 나, 길영을 불러서 같이 뱃놀이하고 놀았다.

아니 평상시 뭐하길래 시험기간에 모이라는 건지?

춘천 강촌에도 가고, 공지천 뱃놀이도 했다. 다들 공부하는 시간에 노니...... 시험 점수가 그런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결심. 고교 3년동안 열심히 공부했으니 대학1년은 놀자고 해서 열심히 놀았다. 겨울 방학을 앞둔 기말 시험기간 동안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러나 공부 할 건 했다.

이 때 수강과목을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했는데 마음가짐이 살짝 잘 못 되긴 했다. 교양과목은 쉬는 타임으로 적당하게 점수를 받고, 전공과목에 열심히 하자는 전략이였다.

의레 교양과목에서 점수를 잘 받고 전공과목은 저학년 때는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성적표 받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내 평균학점을 물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거야?


나의 전략은 저학년 때 좀 고생해서 전공수업을 듣고 고학년 때 좀 널널하게 가자는 전략이였다. 그러나 내가 3학년 때 복수전공을 하면서 이 전략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도 원래 취지대로 3학년 때 열심히 했다.

지금 20여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이 때 놀지 않았음 평생 후회 할 뻔했다 생각이 든다. 이 때 1년동안 생활에 중요한 걸을 배웠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으며, 지하철을 뻔질나게 탔다. 혜화역, 안국역등등 지하철을 타고 일주를 하기도 했다. 지하철 노선표르 보는 법도 배웠다. 대신 광역 버스, 마을 버스 타는 법은 훗날 배웠드랬다. 그냥 지하철 타는 법을 알게 되니 마을 버스 타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서울을 드나드는 용기에 다른 도전도 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혼자서 서울을 드나드니 그 용기가 참 대단했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생각도 했어야 했는 데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경우도 곧잘 있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고교동창들이였다. 서울 소재 대학으로 입학을 했다. 재수, 삼수를 해서. 그렇게 서울이 좋은지? 나 때도 인서울해야 된다는 말이 나돌았다. 나는 대학시절에도 아무 생각이 없어서 인서울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인서울 하려는 동기들은 이미 편입이나 휴학을 하고 수능을 다시 준비하거나 편입시험 준비를 위해 토익공부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래도 강원도에서 알아주는 대학이고 해서 2학년 되면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자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대학졸업을 해야 이젠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들었다.

5일 동안의 기말고사 시간이 끝나고 나는 곧장 짐을 싸서 고향으로 향했다. 가족이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휴대전화 불나도록 연락을 해서이기도 했다.

이렇게 길면 긴 겨울 방학이 시작 되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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