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에서 처음 배우는 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술자리도 있다. 친목 도모로 술이 들어가야 허심탄회하게 이야길를 하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말이다. 서로의 장점만 보다가 단점으로 술주정하는 모습도 보면서 인간미도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나도 이런 시각에 동의한다.
인문계고교 졸업후 O.T.에 가서 나는 마신 술이 생애 첫 술이였다. 같이 있던 동기들은 고교 때 이미 술을 배웠다고 한다. 갓 신입생이 술 예절도 배워서 선배에게 깎듯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고 받는 당사자인 선배는 당황했다. 술예절을 선배들은 못 배웠기에, 이런 예절이 있었냐고 오히려 반문도 했다.
‘어. 있지.... 삼국지에 술 예절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구절도 있었어.’
라고 나홀로 생각하며 내 술주량을 테스트 해 볼겸 해서 넙죽 넙죽 그냥 마셨다. 소주 마시다 맥주 마시고 했다. 몸 속에서 폭탄주가 되었고 안주는 달랑 과자였다. 바로 취기가 올라와서 뛰쳐나가 화장실에서 심하게 토했다. 2000년대에 1학년 시절 지나서 맥주컵에 소주컵 넣고 소주와 맥주를 말아 먹는 신문화가 나오긴 했다. 이땐 신입이라고 말아 먹이지 않았다. 이 때 내가 술을 못한다는 걸 알 게 되었다.
신입생 입학식을 하고 나서 배정 받은 중국학과 선배들과 함께 술자리를 기우릴 일이 생겼다. 아니 그 선배들이 자리를 마련하고 신입생을 초대한 모임이였다. 즉 신입생 환영 파티 인셈!
난 거기서도 여실이 술을 전혀 못했다. 이제 소주 한잔에 정신이 팽팽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냥 다들 멀쩡한데 혼자서 탁자에 고개를 박아버렸다.
“괜찮아? 몇 잔을 연거푸 마셨길래 벌써 쓰러져.....” 한 여자 중국학과 선배가 말했다.
“아.... 하...한~두잔이요...... 정신이 없네요.”
그 중국학과 여선배는 놀라워하며 더 이상 마시지 말랐지만 짖궂은 남자동기와 남선배들이 먹이려 들었다. 이때 나 참 순진해서 기술적으로 버리는 법을 몰라서 거절을 못했다. 받아 마시지는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하, 살거 같다. 바람 쐬니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핑핑 도는 건 사라지지 않네.”
이대로 남들은 놀면서 나는 밖에 나가 계단에 앉아서 추운 초봄의 바람이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그 후 동아리와 중국학과에 같이 배정된 동기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술자리에 참석을 했다. 동아리는 남자학생들이 많아서 홍일점으러 착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학과는 그런대로 성비가 맞아서 동성과도 어울리고 있었다. 여전히 술은 못한다는 게 알려져서 나에겐 사이다를 권했다. 당연히 술 예절은 남자복학생에게 알음알음 눈치껏 나 홀로 배워나갔다.
소주 같은 사이다를 소주잔에 넣어서 같이 어울리게 한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고마웠다.
이런 일도 있었다. 새벽 3시에 나를 불러내는 전화가 왔다.
“뭔 일이지? 새벽 3시에?? 술 자리?”
그래서 옷을 차려 입고 어둡고 위험한 밤길을 걸어 문자에서 말한 술집에 당도 했다.
“뭔 일이야, 늦은 시간에.”
“야, 온 김에 술 값 좀 내 줘라.”
“뭐어?”
아니, 한 번 휙 둘러면 열 댓명 남녀 학생들이 모여 다 먹고 돈이 없으니 물주를 불렀던 거였다. 내가 그렇게 부유하게 보였단 말인가?
“돈 갖고 나오지 않았어.”
“야, 카드 있을 거 아니야.”
‘이런 순~ 날강도 같으니!’
“야, 넌 그러면 카드 쓰면 될 걸 왜 찾아? 신용카드 만들지 않았고 돈 갖고 오지 않았어.”
그러면서 내 텅 빈 지갑을 보였다.
나도 날강도 같이 얻어먹을 생각으로 나왔던 것!ㅎㅎㅎ
그래서 나를 보내지는 않고 다른 학생을 부르더니 이 남학생은 단 번에 결제를 해 주었다.
“봐. 단 번에 해 주잖아. 얼마나 좋아.”
‘허. 적반하장이네. 부르면 나오나 봐라.’
이런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3번 더 불러댔다. 새벽 3시나 4시. 주로 새벽4시에 부르면 다 끝나고 돈 없어서 대신 내 달라는 거다. 왜? 별 사이도 아닌 데? 돈 관계는 깨끗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 3번에 같은 남학생이 물주였다. 그래서 물었다. 넌 왜 돈을 내 주냐고.
“친구 잖아.”
이런 맹추! 거기에 그의 뒤에서 다 먹고 나와서 물주로 돈만 내고 마는 그를 욕하는 말을 들었다. 그 후 그는 돈만 내는 멍청한 짓을 계속 했다. 그 후 나는 새벽 4시에 부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나는 그다지 잘 살지 않는다.
그냥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다. 근데 내 태도가 예뻐 보였는지 귀공녀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얘네들이 나를 바보로 아는 건지? 나는 돈을 헛투로 이런데 쓰는 게 싫었다.
이런 애들은 내 주변에 없는 게 낫다.
그 후의 술자리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이용만 하는 지 모를 일이다. 밤거리를 술자리 찾아 가다 술 잔득 취한 남자들에게 추행 당할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이 말을 하면 상관없단 듯이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술자리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뭐라 그런다. 와..... 왜이리 난 물주에 무시를 달고 살아가야 하는가?
그 다음부터 즉, 2학년 때부터 슬금슬금 술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학년 2학기 때 완전히 술자리를 가지 않았다. 오로지 공부에 매진해서 좋은 학점을 받았다. 난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지 않은 거지 하면 높은 성적을 잘 받는다. 되돌아보면 저학년 때 과목 전략을 잘못 짠게 있긴 했다. 이 때 점수를 잘 받았다면 4년 대학평점을 잘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술예절은 나중에 배웠지만 어쨌든 난 술을 못해서 술자리가 부담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