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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당신에게도 불꽃축제를 즐길 날이 오길

불꽃이 오색 빛의 길을 낸 사진을 봤어요. 반짝이는 여러 갈래 길이 제 머리 위로 막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펑펑 터지면서 멀리 퍼지는 고운 빛 가루처럼 동희네 가족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보냈던 가을이 생각났네요. 어머니께 편지를 받은 날은 차가운 입김이 나오던 쌀쌀한 11월이었어요. 격주로 한 번씩 가던 숲 체험이 끝나는 날이었죠. 오랫동안 집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동희를 세상에 발을 딛게 해주어 고맙다는 편지였어요.


처음 만난 동희는 빛처럼 환한 아이였어요. 하얀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쓴 얼굴의 동희가 절 보고 웃어주었지요. ‘씩’ 수줍게. 반면에,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절 마주하셨죠. 동희를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날 때마다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세심하고 차분하게 알려주셨어요. 동희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기 쉽고, 골절된 뼈는 회복이 되지 않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바깥 생활을 거의 할 수 없었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암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직장을 쉬고 계신 동희 아버지까지 4식구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간의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어요. 첫날 이후엔 저를 볼 때마다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어요. 아, 웃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제가 집에 오는 유일한 손님이라며. 다시 직장에 복귀하기 위해 천천히 집 안에서 걷기 운동하던 동희 아버지, 장난기 있는 귀여운 초등학생이지만 행동은 의젓했던 동생 태준이, 나중을 위해 동생은 공부를 잘했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말하던 어머니 얼굴이 동희와 함께 떠올라요.


각자 다른 이유로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바깥세상을 만났으면 했어요. 숲 체험 프로그램을 조심스레 기획했지요. 격주로 한 번씩 진행하는 것이지만 많은 기관과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근처 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숲 해설가, 6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하기로 했죠. 외출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외출의 기회를 주고 싶었고요. 이왕 하는 외출이라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내가 전해주는 교과서의 지식보다는 바람과 하늘과 햇살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분명 더 힘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요.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집과 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나는 시간, 교육의 한계를 느꼈던 것도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좁은 공간에서 일대일로 수업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요. 이를테면, 한글과 숫자를 아는 것이 동희와 다른 친구들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 같은 거요.     


복지관 차량이 운행되는 지정된 장소까지 나오는 일도 동희한텐 쉽지 않았죠? 중학생이 된 동희 체구가 어머니보다 커졌어요. 동희의 몸과 마음이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다른 가족까지 돌보느라 힘이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고도 남았어요. 집에서는 타지 않는 휠체어지만, 바깥 활동을 위해서는 휠체어를 타야만 했죠. 어머니는 ‘끙’하고 힘을 한 번 주고 동희를 업어 휠체어에 태웠어요. 저는 아무리 어금니를 꽉 깨물어도 허리를 일으킬 수 없던데 어머니는 한 번에 일어났어요. 160cm, 50kg의 체구는 비슷한데 말이죠. 어머니는 할 수 있고, 저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차이는 뭘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내가 요령이 없나, 힘이 부족한가 싶어 한참을 생각했어요.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교사인 저는 엄마를 따라갈 수 없는 일이 많음을 인정해야 했어요.           


동희는 숲에서 만난 곤충을 손바닥에 조심스레 올리고, 곤충이 동희의 손등을 따라 기어가며 간지럽히는 느낌을 좋아했어요. 크고 작은 나뭇잎을 두 손 가득 모아 머리 위로 한꺼번에 날리면서 입을 벌려 큰 소리로 웃었고요. 동희 함박웃음이 나뭇가지 사이의 햇살에 투영되어 환하게 빛났어요. 휠체어를 타고 본 나뭇잎, 잠자리, 도토리, 솔방울, 들꽃 요정이 오색찬란한 빛의 길이 되어 동희가 힘들 때마다 어두움을 물리쳐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께 받은 편지의 답장을 하지 못한 미안함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답장을 하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웠던 것 같아요. 20대인 제가 40대인 학부모님께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몰랐기도 했고요. 이제 40대가 되어보니, 조금은 편하게 어머니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아 핸드폰 번호를 찾아보았어요. 016으로 시작하던 핸드폰 속에 남겨진 번호를 이젠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동희네 가족도 불꽃으로 수놓아진 밝은 날을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4명이 함께 웃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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