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도 서른이 되었다. 첫 발령지에서 만난 준서는 자신의 장애를 조금 부끄러워하는 중학교 신입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직업교육을 받는 전공과에서 다시 만난 건 준서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나의 첫 번째 제자 준서는 신설된 전공과에서 또, 직장인 1호가 되었다.
준서의 수습 기간에 직무지도원으로 함께 일했다. 준서의 업무란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커다란 세척기에 애벌로 헹군 식기를 차곡차곡 넣은 후 기계를 돌리는 일이었다. 보기엔 과정이 단순하고 일의 난이도도 괜찮아 보였지만, 착각이었다. 내가 맛있어 보인다며 이것저것 욕심내서 담아 신나게 먹을 때 썼던 흰 접시는 돌덩어리만큼 무거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방수 재질의 앞치마와 모자는 바람이라곤 통하지 않았다. 걸치기만 하면 더운 여름 운동장에서 뜀뛰기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헉헉’대며 일하는 동안 ‘줄줄’ 흐르는 땀의 양만큼 내 몸무게도 빠졌다. 준서의 몸무게 변동은 물어보지 않았다. 겨우 견디고 있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직무지도원 2주 업무 종료 후, 한숨을 쉬었다. 이제 커다란 찜질방 한가운데서 체력 단련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지만 유쾌하진 않았다. 같이 일하러 가서 혼자만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작당 모의하여 일을 꾸며놓고 나만 쏙 빠진 느낌, 친구 혼자 벌 받기 위해 교무실에 있는 걸 보고 뒷문으로 조용히 나온 찜찜한 기분이었다. 작당은 내가 주도했는데, 구덩이에 준서만 빠져 버렸다. 그런 준서가 서른이 되어 이직을 고민하면서 내게 연락을 했다.
준서를 직장에 취업시키고 한동안 내가 잘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취업한 것은 결국 준서를 위해 좋은 일일까? 이제 겨우 20살 초반인데 취업을 늦게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2시간만 일해도 허리가 부러질 것 같던데 6시간 일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다른 일을 더 알아보고 취업하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세상의 많은 20대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을 즐기고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게 밀어 넣었구나. 다시 시작하는 30대에겐 어떤 일자리가 좋을까? 20살부터 30살까지 식기세척만 10년 동안 한 준서에게 어떤 걸 권할 수 있을까?
깨끗한 작업복이 예뻐 보이지만, 손도 빠르고 메뉴를 외워야 하는 바리스타?
많은 남학생이 선호하는 직종이지만, 비싼 외제 차를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세차원?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엑셀이라는 벽 앞에서 한숨 쉬어야 하는 사무직?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님, 준서가 할 수 있는 직종의 범위가 거기까지인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엔 다시 대기업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식기세척 직을 권유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애인이 근로하기에 적합한 생산 시설을 갖춘 곳을 말한다. 내 마음은 불편했지만, 대기업이라는 글자가 큰 보호막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대기업인데. 예전과 같은 업무를 해서 힘든 점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시설이 좋고 같은 주방에 함께 일하는 지적 장애 친구들도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친구들이 없는 주방에서 외로웠구나.
준서가 다쳤다. 추운 겨울날, 쓰레기봉투를 버리려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수술 날짜가 정해져 집 앞 2차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했다. 담당 직업재활사와 부서팀장이 다녀갔다고 전화로 알려줬다. 음료수를 들고 와서는 산업재해로 하기엔 여러 가지 복잡하니, 잘 넘어가자고 했단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면접을 보다 생각이 나지 않거나, 끝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상대방의 눈을 보고 또박또박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말은 몰라도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는 잊지 않아야 한다며 문장을 외웠는지 확인했다. 당해연도 최저임금은 얼마이니 월급이 제대로 나오는지 꼭 다시 보라는 말도 힘주어서 했다.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서 돈을 받는 방법만 열심히 가르쳤지, 나쁜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직장인의 자세만 강조했지, 이해가 어려운 회사의 방침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까닭이다. 사회라는 정글에 대해 무지한 까닭이었다. 준서와 준서 어머니는 수술 후 재활하는 동안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나 역시 회사 담당자에게 어떤 문의도 하지 않았다. 준서가 밉보일까 봐 걱정되었다. 다른 경로로 노무사에게 상담하여 병원 진료비와 치료 후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왜 회사는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만 여전히 가지고 있을 뿐이다.
30대 중반이 된 준서는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던 회사에 다행히 출근하고 있다. 최저시급에 일한 날수를 곱한 것만큼 급여도 받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준서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이다. 준서 동생이 결혼하고 나면, 혹시 동생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지. 준서 어머니 당신이 언제까지 돈을 벌어 준서와 함께 지낼 수 있을지.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생각은 안 할 수는 없는 건지.
“준서야, 잘 지내고 있니?”
“네, 선생님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 가르쳤어야 했다. 묻지 않은 것도 이야기해줘야 걱정하는 일이 없다는 걸. 가령, 회사도 잘 다니고 있으며, 다친 데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상대방이 안심한다는 것을.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나도 준서처럼 한 줄 메시지만 보냈다. “그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