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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목소리의 침묵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더 거대하고 더 유구한 우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우물들이 있을 뿐이라고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보다 생각했다.” <홍은전 지음, ‘그냥사람’ 중에서>     


이렇게 멋진 문구를 쓴 작가 홍은전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혹시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 또는 후배는 아닐까? 전혀 알지 못했던 그녀와 연결고리가 혹시 있지 않을까 하며 검색해보았다. 어설프게 학연으로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장애인 야학에서 활동하기 전 그녀의 기록 찾기에 실패했다. 예상치 못한 수확도 있었다. 20년 전 작가와 비슷한 길을 걸으며 야학에서 활동했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름 석 자를 검색하니 바로 강연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선배의 직함은 장애학 연구활동가였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 기관 대표도 겸하고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후배에게 술잔을 기울이던 마냥 사람 좋은 선배가 어떻게 앞장서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며 길바닥에서 농성하는지 의아했었다. 학과생의 90%는 임용고사를 보고 얼마 안 되는 몇 명만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진로를 정했으므로 선배의 소식은 졸업 후 듣지 못했다. 어쩜,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홍은전’을 검색하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니 연관어로 이름 석 자가 바로 뜨는데 말이다.      


지난 3월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호선 경복궁역을 출발하여 4호선 혜화역으로 가는 경로에서 출근길 시위를 했다. 

“아, 내일 일찍 출근해야겠네요.”

“그들이 요구하는 게 장애인 활동 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보장 예산 책임이던데, 그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요? 뭐든 적당히 해야죠.”

“시민들의 지지는커녕 욕먹는 이유가 있지요.”

“저는 이분들의 복지가 더 나아지길 원합니다. 출근길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맞지만, 이들이 일상을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서울 지하철로 출근하는 분은 참고하라며 올라온 글의 댓글은 다양했다. 최소 세 번 이상 피해를 본 사람이 아니면 입댈 자격이 없다는 글이 올라왔다. 매일 매 순간 이동이라는 것이 어려운 사람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지나친 요구라고 말할 수 없다는 글이 이전 글을 반박했다. 이러한 순간에서조차 분명한 내 입장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나는 그냥 여기도 끼지 못하고 저기도 충실하지 못한 어정쩡하게 특수교사란 명찰만 달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편의를 누군가의 힘겹고 고단한 투쟁으로 누렸음에 늘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 10분이 중요한 출근길에 시위로 늦어지는 전철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투덜투덜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수학급에서 함께 하는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예쁘지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학업과 생활에 피해를 준다며 항의를 받을 때는 움츠러들기도 했다.      


‘나는 혹시 이쪽과 저쪽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공감 잘하는 사람이라는 허울을 쓴 줏대 없는 사람일까?’ 

‘성실한 특수교사가 되길 원하면서도 약자 편에 서기를 주저하는 비겁한 사람일까?’ 

‘내 우물이 세상의 어디쯤 있는지 관심 없는 이가 나일까?’

‘다른 이들 우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나?’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권 기록활동가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이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이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여전히 주변인으로 언저리에서 지내고 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좋은 교사는 공감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순간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말은 나의 합리화일 뿐이라고. 머뭇거리다가 ‘그때 그랬어야 해.’라는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세상의 일에 민감해져야겠다. 멀찍이 서 있는 내가 다른 사람 우물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한 발 짝 앞으로 나아가야 함도 기억해야겠다. 웃으면 눈썹이 살짝 내려갔던 선배의 노동아카데미 기획 특강의 날짜를 다시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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