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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빛바랜 감사장

새 학기를 시작하고 이 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은정이가 일하는 스타벅스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매니저는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은정이가 출근하지 않아 전화했는데, 핸드폰도 꺼져 있고 연락이 닿지 않아요.”

은정이네 집에서는 출근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반 학생인 도연이의 부모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도연이가 자신을 찾지 말라는 문자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은정이와 도연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특수학교 전공과에서 직업교육을 이수한 직장인이었다. 각각 다른 지점에서 일하는 둘이서 같은 날 출근하지 않았다니, 함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친구 둘이 함께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이렇게 하루 이틀…. 훌쩍 일주일이 흘렀다. 지적장애 학생이긴 하지만, 스무 살 넘은 성인이니 실종으로 보긴 힘들고 가출로 봐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다. 자신을 찾지 말라며 잘 있다고 학생이 보낸 문자가 증거라고 했다.   


학기 초에 받았던 사진을 넣고 간단한 워드 작업만 하여 급하게 전단을 만들었다. 피시방, 찜질방, 모텔이 많은 곳이 어딜까 생각했다. 20대 학생의 흥미를 끌만 한 것이 많은 강남구 일대 3곳에 가보기로 했다. 어설프게 만든 전단이지만 몇 곳의 가게 주인 앞에서 연락처에 형광펜으로 줄 치며 열심히 설명했다. 이러한 학생을 만나게 되면 적힌 전화번호로 꼭 연락을 달라는 말을 반복하여 열 번쯤 했을까? 우연히 들어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사진을 보니 자기가 본 학생이 정확하다며 처음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슬며시 말끝을 흐렸다.     


“어떤 남자들과 함께 왔었어요. 문신한 남자들과 저 건너편 호텔로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는 입을 떡 벌리며 허옇게 변해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떡해. 가출 소녀를 찾는 일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고 생각했을 때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나. 가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렇게 무모하게 나설 일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학생 옆에는 누군가가 있다. 어쩌면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는 한 선생님이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어떡하긴, 지금부터 정신 차려야지!        


학생을 찾으러 나섰던 교사 13명이 계획을 바꿔 P 호텔 앞에서 잠복했다. (잠복이란 단어를 이럴 때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몸을 숨긴 것이 잠복이라면 우리도 잠복한 거다. 떼거리로) 결국, 용무늬가 새겨져 있는 팔을 휘저으며 연신 자신은 은정이의 그냥 아는 오빠라던 남자 한 명, 경찰 옆에서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우리를 아래위로 노려보던 여자 한 명을 잡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은정이는 경찰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의 다른 일당은 도연이를 데리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은정이의 그냥 아는 오빠라고 말을 하던 남자는 강남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아, 제기랄, 그냥 목포에서 배 타고 가게 해야 했는데. 진즉 중국으로 보내버릴걸.” 머리에서 전기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뇌가 잠깐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SNS에서 친구 추가 버튼을 누른 후 이어진 관계는 진짜 친구가 아닐 수 있음을 가르쳐주지 않은 날 탓했다. 너희를 약자라고 생각하고 약자를 어떻게 이용할까만 고민하는 나쁜 사람에게 친구는 돈벌이 이용 대상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는데. 머릿속은 후회와 분노로 가득 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경찰서 긴 의자에 앉아 놓쳐버린 일당이 도연이에게 더 이상의 잘못을 하지 않길 기도하는 것 일 밖에. 다음 날, 어쩔 수 없이 출근 시간이 되어 나간 학교에서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다른 전공과 학생에게 알리고 또 강조했다. 모든 사람을 그냥 믿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교육하는 중간에 전화가 왔다. 사기꾼 일당이 도망가면서 도연이와 헤어졌고, 쉴 곳이 필요한 도연이는 따뜻한 도서관서 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연이를 무사히 찾았다고. 사건은 다행히 “유명기획사에서 일할래? 지적장애인 울린 취업 사기”라는 제목으로 뉴스 시간에 방송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만난 은정이와 도연이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자퇴서를 내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요.’라고 했다. 정성을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결국 자퇴서에 자필서명을 할 때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온 마음 다해 사랑한 애인이나 희생하며 키운 자식한테 하는 말처럼. 아이들이 마음을 못 잡는 이유는 가정불화에 있고, 학교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말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마음 한쪽 찜찜한 기분을 털어냈다. 그리고 잊었다.   


“평소 경찰에 대한 무한한 관심으로 경찰업무발전에 노력하였으며, 특히 중요 범인 검거에 기여한 공이 커서 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삿짐 정리하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책 사이로 강남경찰서에서 받은 감사장을 발견했다. 반들반들한 파란색 덮개 속 금색 딱지가 흰 종이 위에서 유난히 반짝거렸다. 마음속 깊이 부끄러운 마음과는 다르게. 경찰에 대한 무한한 관심은 운전하다 2~3초 갈등하며, 노란불에 쌩 달린 후 아슬아슬하게 바뀐 빨간색 신호등을 볼 때밖에 없는데. 처음 시작은 20대 초반의 가출 여학생 둘을 찾기 위함이었다. 학생을 찾기 위해 작성한 A4 2장의 계획서에는 어디에도 ‘범인 검거’라는 문구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적장애 학생의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용하여 돈을 갈취한 나쁜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또, 어떻게 하다 보니, 감사장의 문구처럼 경찰 업무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아이들의 마음까지는 내 관심이 닿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며 밀어내는 사람들이 만든 경계선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그들의 손을 잡지 못했다. 좀 늦었지만, 나의 역할이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미미한 미풍이었음을 고백한다. 속삭이듯 살살 부는 바람이었지만, 하늘거리며 간질이던 몇 가닥의 머리카락 사이로 따뜻하게 비치는 햇살도 함께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는 동안, 아이들도 좋은 기억의 미풍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손 내밀어줬다는 기억 한 조각이기를. 하지만, 못내 아쉽다. 감사장이 아닌 졸업장이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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