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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저도 사직서를 품었습니다

2002년 25살,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중간에 아이 셋 육아로 휴직과 복직을 한 시간을 빼도 15년 넘게 교직에 있었네요. 여전히 저는 일찍 학교에 출근하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후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사부작사부작 수업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같이 웃을 때는 ‘내가 니들 때문에 살지.’라고 생각도 합니다. 제 안에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힘을 끌어올려 높은 톤으로 목소리를 내고 웃으며 수업합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열정이 매일 같지 않음을 느낍니다. 기운을 끌어올리는 데 점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병 안의 물이 바닥에 찰랑찰랑하여 통째로 들고 마셔도 잘 나오지 않을 때처럼 내 안에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저 자신이 소진했음을 인정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제2의 삶을 위해 품고 있던 마음을 천천히 꺼내며 기록합니다. 



휴직 기간을 합쳐서 20년 일하고 그만두려고 생각하다 보니 발령 첫해 아이들이 떠오릅니다초임 교사 시절장애 정도가 심하여 등교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복지관 차량 협조봉사자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현장체험학습도 힘든 상황이었어요아침엔 때꾼한 얼굴을 하고 일주일 1회씩 나오는 봉사자의 얼굴도 학생을 만나 활동하는 사이 해맑은 얼굴로 변해 있었어요눈은 작게입은 크게 짓는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휠체어를 밀고 산길을 오르는 힘듦을 다 잊게 했습니다그때의 마음그날의 온기그곳의 햇살을 생각하면 사직서를 내는 것이 맞는가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저는 사직서를 씁니다.

소진했음을 알면서도 더 머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내 바닥인 에너지의 빈 병을 채워줄 공간과 시간을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사직만이 빛나는 내 미래라고 장담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어쩌면 1년도 안 되어, ‘두 번째 일역시 내 적성에 안 맞아나는 최선을 다했지만이제 힘이 없어,’라고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다른 이에게는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사실 몇 년 전부터 꾸던 미래가 있었어요상상하던 앞날에는 순서와 계획도 있었지요첫 번째건물주가 된다두 번째, 1층에 책방 겸 카페를 연다세 번째책방 옆에 세차장도 계약한다네 번째책방카페세차장에 장애인 직원을 고용한다마지막으로 오래오래 직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열심히 돈을 번다.


첫 번째 계획부터 지킬 수 없네요건물주가 되기에는 제 노력과 능력이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하지만건물주가 되기 위해 더 이상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이제 기획자의 삶주체자의 시간공유자의 마음을 갖고 지내려고 합니다책방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문학 상담하브루타글쓰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멋있게 인생을 꾸려가는 이를 초대할 예정입니다삶의 주체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우고아름다운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제가 1,400자 넘게 쓴 내용은 사직서에 기록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교와 사회는 저의 사정을 밀도 있게 들여다보진 않을 테니까요. 또, 사직서를 자신 있게 ‘턱’하고 내려놓는 날은 더디게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용기를 모으는 중이거든요. 언젠가 ‘저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며 주저주저, 우물쭈물하더라고 꼭 그날이 오길. 꿈은 구체적으로 그려야 이루어진다던데. 미래의 사직서, 이만하면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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