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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07. 2024

책방에서 글 쓰지 않는 여자

책방 영업 준비를 마치고 책상에 앉은 지 1시간이 지났다. 네이버 첫 화면 주요 소식을 이것저것 눌러 보았다. 인터넷 세상에서 길을 헤매다 보니 각성이 필요했다. 연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린 후 물처럼 홀짝홀짝 마셨다. 카카오톡으로 받은 모임 참석에 관한 답을 했으며, 이번 주 일정을 다시 머릿속에 입력했다. 여전히 컴퓨터 화면 속의 A4는 깨끗하다. 2024년 남은 3개월 동안 열심히 써서 ‘유종의 미’라는 것을 거두기엔 역시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다. 내가 글을 쓰는 것보다 유명 작가의 신간을 읽고 감탄하며 휴일을 보내는 것이 고요와 평안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그게 더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쓰는 일을멈춰야 하는 게 아닐까. 손익 계산을 하며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스스로 한다.      


내가 쓰는 일을 싫어했던가. 하기 힘드니 도망가고 싶은가. 그건 아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에 한숨 뱉는 중이라 안 쓸 핑계를 찾는 것뿐이다. 혼자 가두리를 만들기로 했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외적 동력으로 ‘공모’를 선택했다. 독후감 공모전과 수필공모전 두 분야를 공략하기로 했다. 


책방을 하는 나는 책을 읽어야지만 많은 도서 중에 보석을 찾을 수 있고, 명품가방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을 손님에게 추천할 수 있다. 책을 읽고도 끄적거리지 않으면 날아 가버리는 미천한 기억력 때문이라도 기록해야 한다. 나에게는 책을 읽고 쓰는 동력으로 독후감 공모전만 한 게 없다. 지역이나 재단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대회가 이리 많은 줄 몰랐다. 지역에서 하는 대회는 대개 한 도시 한 책 읽기로 지정된 도서의 감상을 써야만 했다. 예전에 읽은 책이면 더욱 좋겠지만, 읽지 않은 책이라면 이번 기회에 접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오케이. 목표는 용인, 성남, 진천, 부산, 창원 대회 모두 써보는 것이었지만, 결국 두 지역의 독후감 대회에만 응모했다.  


2년 동안 7일~10일 사이로 에세이 1편씩 써서 차곡차곡 폴더에 넣었다. 꾸준하게 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공모전에 글을 제출하려니 딱 마음에 드는 글이 없다. 자신 있게 보낼 만한 글을 찾기 어려웠다. 이 글은 짧아서 주최 측 기준에 맞지 않고, 저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겨우 몇 편을 골라냈다. ‘일상 속 장애인’을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공모전과 주제 제한 없이 여성만 응모할 수 있다는 대회에 글을 접수했다. 


나의 내적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부 요인을 설정한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나름, 후탈이 있었다. 도전한 이상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 심리를 생각지 못했다. 혹시나 내 이름 석 자가 수상자 명단에 떡하니 박혀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라니. 결과발표일이 되면 공지 뜰 때까지 홈페이지에 수없이 들락날락하다가 나중에는 의미 없이 클릭질을 해대는 모습이란.


내가 보낸 한 지역의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게 된다면, 시상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꿈은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잖아.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따르면, 수상을 하게 될 것처럼 KTX 타고 여행 갈 날을 상세히 시뮬레이션 돌렸다. 시상식이 끝나면 회도 먹고 와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네. 진짜 상상으로 끝나버렸지만. 홈페이지에 올라온 심사 결과 파일은 열어볼 필요도 없었다. 시상식에 참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문자로도 연락한다고 했으니. 낯선 번호의 문자를 받지 않았으므로 내가 KTX 탈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심사위원 심사 소감 영상을 보니 속이 쓰렸다. 하필 내가 좋아하는 문경민 작가와 임솔아 작가가 영상에 딱 나타나는 순간, 더 애를 쓸 것을, 꼼꼼하게 퇴고하지 않았다는 후회로 한숨이 나왔다.


알알이 초콜릿이 박힌 과자를 먹으면서 살이 빠지기를 바라는 것.

드라마 본방송 사수하며 시험 점수 잘 나오기를 원하는 것.

쓰는 고통은 1도 감수 하지 않으면서 상 받기를 기대하는 것.

인생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을진대, 오로지 보상만 내 손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일이 수없이 많겠지.      

외적동기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는 좋았으나, 글쓰기 안에서 본질의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는 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졸다가도 눈이 떠지는 일, 컴퓨터 가득 하얀 종이를 바라봐도 절망스럽지 않은 일, 이런 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뿌듯해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나의 글쓰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17평, 널찍한 내 공간에서 커피만 홀짝이지 말고 원고를 쓸지어다. 작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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