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는 문제들

2025.07.30

by 여전히

순서대로 적자면 어제 도착했던 마을, 그러니까 오늘 출발했던 마을에 하나 있는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어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다녀왔지만 열려있지 않았다. 구글에는 영업 중으로 떴는데 말이다! 원래 계획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열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는 수 없이 비아프랑카에서 사놓은 라면을 먹기로 했다. 라면을 가지고 주방으로 가서 라면 끓일 물을 올리고 식기를 세팅하려는데 포크가 없는 것이다. 갈리시아 공립 알베르게부터 주방에 식기가 잘 없다는 소문을 들었던 바, 그래도 수저는 있겠지 싶었다. 숟가락, 나이프, 냄비 다 있는데 포크가 없었다. 포크가 없이 라면을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주방을 다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베르게의 자원봉사분께 물어보았다. 자원봉사자분도 주방을 다 뒤져보더니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쯤 되면 나가서 사 먹으라는 거지. 하는 수 없이 구글을 켜서 주변 식당의 리뷰를 보고 있는데 일회용 포크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오시던 할아버지. 천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찌어찌 그래도 밥을 먹고 쉬다 내일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혹시나 열려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닫혀 있었다. 이쯤이면 포기하는 게 맞다. 그렇게 알베르게로 향하는 도중 대형사고가 났다.

쪼리가 수명을 다했다. 오른발이 신발에서 뜨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발을 쳐다보니 쪼리가 뜯어져 있었다. 뇌정지가 오는 순간.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길거리에서 한참 웃다 절뚝거리며 알베르게로 향했다. 차라리 맨발로 걷고 싶었지만 오세브레이로는 지금 도로가 공사 중으로 비포장이라 발로 걷기엔 매우 아팠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일과를 정리하고 누웠다. 하루를 곱씹으며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고 위로를 한 후, 아침을 못 샀으니 내일 아침에 들릴만한 바를 찾아보았다. 마침 내일 가는 길에 갈리시아 수프를 파는 곳이 있었다! 갈리시아 수프는 우리나라 우거지 해장국 같은 맛과 비주얼을 자랑했다. ‘이거 먹고 다시 힘내자’ 생각에 구글에 저장 후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정말 나한테 왜 이러지? 영업하신다면서요. 갈리시아 수프를 파는 바르도 문을 안 연 것이다.

라면만 먹은 상태로 17km를 걸어왔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아침 10시까지 버텼는데 결국 아침에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바르가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성질이 뻗쳤다. 정말 더 이상 걷기가 싫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걸어야지. 걸어야 도착해서 밥이라도 먹지.

오늘 숙박할 공립알베르게는 주방이 없다고 안내되어 있어 순례자 메뉴를 먹을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면 아침으로 갈리시아 수프를 먹고 점저로 순례자메뉴를 먹으려 했다. 하지만 갈리시아 수프를 먹지 못했으니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순례자메뉴를 먹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힘없는 몸을 이끌고 트리아카스텔라로 향했다.

알베르게에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1시. 가방을 세워두고 레스토랑으로 바로 향했다. 설마 여기도 안 열었겠어? 초조한 마음으로 가게 입구까지 걸어갔다. 열었다! 이미 리뷰를 통해 올라온 메뉴판으로 메뉴는 다 골라놨다. 앉자마자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뭔가 조용하다. 가게를 들어서자 직원이 다가와 음료를 마실건지 물어본다. 식사를 할 거라고 하니 12:30분부터란다. 오 마이 갓! 평소라면 30분 기다리면 되지 뭐, 할 텐데 이제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가게를 나와 멍하니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걸 쓰는 지금에서야 왜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는지 알게 됐다.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일어난 일 중에 내가 선택해서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문이 닫혀있었을 뿐이고 포크가 없었을 뿐이다. 쪼리는 원체 약했기에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게 아니었다. 그런데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니 내가 힘들어진 것이다.

살면서도 이런 순간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어제오늘처럼 반응한다면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생각해 보았다. 음. 별로다. 아마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선 해결책을 찾지 않기로. 그냥 빨리 잊기로. 몇번이고 쌓여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로.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O Cebreiro 5:50 -> Triacastela 11:40

거리 22.6km (공식 21.1km)

걸음 38.428

내일도 부엔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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