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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Sep 11. 2023

나의 연애 이야기 '우리의 갈등'

J와의 연애는 행복했지만,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가 술을 마시면 조절을 못 한다는 게 나에게는 큰 불행이었다. 어느 정도 술을 잘 마신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취할 때까지 먹는 것은 몰랐다. 하루는 그가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늦은 시간까지 연락이 없었다.

‘아, 또 연락을 안 하네.’


 


나는 답답한 것은 못 참는 스타일이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로 술 냄새가 풍겼다. 혀가 꼬인 상태로 전화를 받은 그에게 내가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디야? 왜 말을 안 해? 술은 얼마나 마신 거야?”


 


나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연신 공격했다.


“아 진짜. 야, 꺼져. 내 세상에 들어오지 마, 제발.”


“뭐라고?”


“꺼지라고.”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에게서 욕을 듣다니,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나에게 첫 번째로 한 술주정이었다. 보통 술 먹고 실수했을 때 다른 커플들은 어떻게 할까, 이런 경우는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다음 날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눈물이 나왔다. 나는 술 먹고 술주정하는 사람이 싫었다. 내 남자 친구가 그럴 줄 몰랐으니까 마음이 더 아팠다. 그는 나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고 나는 나답지 않게 넘어가 주었다.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믿고 싶었다. 그 이후에도 남자 친구는 두 번의 실수를 더 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가 끝냈다면 밑바닥까지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의 실수들로 인해 나는 더 예민해졌다. 그런 나를 J는 다 받아 주었다. 간혹 본인도 나의 예민함을 받아 주기가 어렵거나 내가 선을 넘는다 싶으면 냉정하게 변했다.



“국화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지 말아 줘. 모래를 가지고 싶다고 손바닥에 모래를 올려놓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꽉 잡으면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게 되어 있어.”



그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래에 비유했다. 나는 그가 나의 연락에 답장을 늦게 하거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재촉하며 화를 냈다. 그는 그런 나를 숨 막혀 했다. 나는 왜 그를 움켜쥐려고만 했을까? 그를 너무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나의 욕심이었을까. 나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무던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나를 달래 주고 위로해 주었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느꼈을 텐데 그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점들이 아주 고마웠다. 지금까지도.


 


그는 당시에 아직 대학생이었고 대학원에 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잠시 교수님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세미나 준비에 힘들어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가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그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취업 준비를 왜 안 하냐고 화도 내고 꽤 괴롭혔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가 내 마지막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지난 연애들에 있어 관계를 맺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던 남정네들과 달리 J는 나를 기다려 주고 믿음을 주었다. 첫 경험이라 두려움이 컸던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다 주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래서 의미 부여하는 것이 더 많을까?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 J는 성당에서 주임 신부님이 산티아고에 보내준다며 그곳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산티아고를 가는 건 좋지만 걱정이 되었다. 주임 신부님이 괜히 돈을 써가며 순례를 보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J가 신부님이 되려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무작정 두려웠다. 나는 그가 고민한 적이 있었다는 말만 듣고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우는 날이 참 많았다. 여자를 그렇게나 많이 울리는 남자라니. 그는 참 모자라고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가 산티아고를 갈 때 나는 그곳을 다녀온 지인을 통해 준비물도 함께 준비하며 그를 도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함께 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은 모양이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홀로 걸으며 완주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라면 뭐든 할 수가 있겠구나’라고.


그는 나에게 했던 실수들을 만회하기 위해 술을 끊었다. 나와 자기 자신을 위해 술을 끊는 모습에서 그에게 더 믿음이 갔고 이 사람이라면 미래를 함께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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