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오 Aug 16. 2023

왜 나만 이 모양일까?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1


20대는 힘들다. 부처의 말처럼 삶은 고행이라지만,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가 20대 후반인 걸 보면, 20대는 청춘이라는 근사한 포장지에 쌓인 우울일 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엔 이른 나이이고, 새로 헤쳐나가야하는 건 또 너무나 많다. 받는 것 없이 젊음을 핑계로 애를 써야하는 시기 아닌가. 경쟁과 비교는 이제 한국인의 DNA에 들어가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삶에 너무 익숙해졌다. 정해진 사회적 기준은 어찌나 견고한지. 어떤 어른들은 너처럼 편하게 자란 사람이 어딨길래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뭐가 불만이냐며 채근하기도 한다.


덕질이나 연애로 현실을 회피하기도 해봤다. 여행과 소비로 돈을 왕창 써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어서 구조 탓, 집안 탓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학문에서 근거를 찾기도 해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20대는 삶이 막막하고 여전히 괴롭다.


나는 어느덧 20대를 마무리할 나이가 되자, 나의 학창시절과 20대를 관통하는 문장 한 줄을 지을 수 있었다.

"왜 나만 이 모양일까?"


대학교 4학년 때 유학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집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주위에 미국에서 석박사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내가 교수님들 눈에 든 것도 아니고 학업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미국에서 석박사를 하는 게 내 자아실현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2년을 넘게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이상하게 추진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빨리 성과를 내야한다는 마음은 조급해져갔다. 하지만 노력을 해도(그리고 돈을 써도) 맘처럼 성과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냥 가기 싫었던 거 아니야?"하고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사실은, 이 길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내 마음을 하나도 몰랐다. 내가 겁이 나도 나에게 '가야된다.'고 강요했다. 유학을 준비하지 않을 때 걸어야 하는 길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모른 채 살아간다. 내 마음이 아닌 부모님이 정해준 전공, 형편에 맞는 대학, 상황 봐서 갖는 직업. 그것을 도중에 멈추는 게 얼마나 삶에, 나에게 위협이 되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나와 같은 상황인 사람이 없어서 내가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조차도, 속에는 언제나 삶에 대한 의문과 자신과 연결되지 못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면서부터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정보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날 20대는 다른 세대보다 삶의 지혜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가장 재미있는 매체를 찾을 수도 있으며, 무엇이든 금방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울하고, 불안하며, 외롭고, 많은 것들이 원망스럽다.


편리한 기술이 대신 해줄 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삶이 어떠했는지 정말 진심으로 마주하며 알아차리는 것. 그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나는 처음 극심한 우울로 상담을 받으면서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내 몸의 호흡이나 긴장도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몸으로 요가를 시작하면서 내 몸의 감각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상담을 종결한 이후에 명상(혹은 나와의 대화)과 글쓰기를 통해 진짜 내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비로소 발견하고 정의 내리는 순간. 나는 아주 고유한 존재가 되고, 내가 이 순간 정말로 나로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 내 삶을 어떤 것들로 채워나가고 싶은지 알아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크게 도약한 순간은, 내가 가장 외롭고 고독하며, 홀로 있을 때가 많은 시기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엔 여러 이유로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거나, 외로운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끔찍하고 괴롭기만한 그 순간이 분명히 당신을 구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조금은 덜 외롭기를, 당신보다 더 개복치 같은 사람도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써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