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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Aug 16. 2023

처음 내 목소리를 들었던 날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2



누군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있고, 위로를 잘 해주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행동을 보여줄 줄 아는 사람이고, 후자는 타인의 감정을 잘 공감하는 사람이다.

나는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힘들어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함께 슬퍼하고 화내기도 잘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도 힘들다고 말하거나, 내가 바라는 걸 요구하는 건 어려운 사람이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상담을 시작한 시기,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집안 환경으로 인해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미국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강의를 결제해서 스터디 카페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Verbal 같은 언어 과목은 너무 어려워 공부를 해도해도 성적이 늘질 않았다. 답답하지만 어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그냥 속으로 삼키고 있었는데 하필 그 시기에 외할머니가 몸이 편찮아지면서 엄마가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할머니를 요양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집은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아주 나빴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 지르고 싸우는 것을 보았고, 아빠는 그럴 때마다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 때부터 나는 엄마의 아빠에 대한 하소연과 삶의 힘듦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며 일찍 철이 들었고, 아빠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늘 안고 살았으며, 바쁜 엄마 대신 동생을 심리적으로 케어하는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심지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나는 늘 그들 가운데에서 눈치를 보고 때때로 말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상황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쭉 이어져왔다.


나는 유일하게 정서적으로 공감이 통하는 엄마가 상대적으로 공감이 통하지 않는 아빠와 동생 속으로 나를 버리고 떠나는 기분이 들어 무서워졌고, 그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울며불며 원망을 내비치면 엄마는 내게 또 화를 냈다. 엄마는 본인이 당황하거나 겁에 질리면 무섭게 화를 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나를 매정하게 내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엉망이 된 마음으로 상담을 다녔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지난 일들을 울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눈을 감고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는 나를 떠올려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마음이 답답해서 스터디카페 옥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모습이요. 공부하러 들어가기 싫어서 밤이었는데 캄캄한 계단에 어슬렁 거리며 서있어요."

"그 모습이 어떻게 보여요?"

"외롭고 쓸쓸해보여요."


천장에서 바라보듯이, 캄캄한 벽을 보고 선 내 뒤통수와 뒷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지금 무슨 말이 듣고 싶을 것 같아요?"


나는 그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빠르게 지나간 문장이 하나 있었지만, 그것이 부끄럽고 중요치 않은 것이라 생각해서 무시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 더 그럴 싸한 말을 고민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보통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질문이 신기했다. 어떤 방식으로 고민해야할지 몰라 정적이 길어졌는데 선생님은 그 상황을 함께 기다려주셨다.


그 순간, 그 선생님의 따뜻한 기다림이 내게는 큰 응원이 되었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다는 메세지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맨 처음 지나간 문장을 떠올렸다. 그 말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만약 사람 마음이 열쇠로 굳게 잠긴 상자였다면, 그 문장은 마법의 열쇠였다. 나는 그 열쇠구멍에 딱 맞는 문장을 잡아내어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그 말은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림이 컸다. 왜냐하면 정말 힘들었던 내가 나에게 보낸 전달 받고 싶은 메세지였으니까.


나는 주어진 일들을 해내야 했기에 괜찮게 살아가야만 했다. 집안 일로 마음이 어수선해도, 공부가 집중이 잘 안되어도, 그래도 나는 꿋꿋이 스터디카페로 매일같이 나가 책을 펴고 앉았고, 몸과 마음이 지쳐도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버스를 타서 상담을 나가야했다. 괜찮아져야하니까.


 그런데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마음이 답답해 캄캄한 계단 위에 영원히 마음이 멈춘 듯한 그 순간에, 정말 원없이 머물러도 된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원없이 답답해해도 되고, 속상해해도 괜찮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나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사람마다 마음 속에는 듣고 싶은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마법 같은 문장. 내 속에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게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그 찰나 같은 순간에 찾아오는 감각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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