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에 입추?! 목수국 너머 가을이 '추'며듭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입추(立秋): 가을이 들어선다는 뜻의 절기로, 태양의 황경이 135°이며, 무더위의 끝이 느껴지고 서늘한 바람이 분다. 농촌에서는 다소 한가하며,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다. [출처:다음백과]
올해 비가 참 자주 찾아왔습니다. 특히 집중호우, 폭우! 작년에도 시골집에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를 걱정했던 기억이 있긴 한데, 올 입추 전후 내린 폭우에는 진짜 산사태가 났습니다. 집으로 올라오는 유일한 길이 흙더미로 막히고, 우리 옆집도 산 흙이 밀려내려와 새로 지은 베란다 프레임이 휘어졌대요.
다행히 우리 집은 무사합니다.
뒷마당 바로 뒤 바짝 붙어있는 작은 산도 굳건하고 앞마당을 끼고 흐르는 냇가에 물이 많이 차올랐었지만 무사히 잘 내려가면서 오히려 냇물 바닥이 싹 한번 정리되어 좀 더 넓고 깔끔해진 것도 같아요. 집에 곰팡이가 좀 슬긴 했지만 큰 탈 없이 이 여름을 지난 것이 참 감사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나요? 습습하고 더운 기운에 가을이라는 말이 아직 낯설지만, 저녁이 되면 서늘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비가 물바가지로 내리꽂듯이 왔었는데, 어떻게 가냘픈 하얀 꽃 꾸러미 목수국은 땅에 머리를 떨구지 않고 얇고 긴 가지에 매달려 있을까요? 신통방통하고 이상하기까지 한 목수국입니다. 물난리야 너희 일이고, 내 할 일만 하겠다는 듯이, 제 때 맞춰 활짝 피어, 고단했을 긴 여름을 찐하게 환송하고 있습니다.
지구 밖 저 편 우주에서부터 분주하게 인수인계를 마친 여름과 가을이, 우리 시골집까지 찾아들어 낮과 밤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한 켠, 조용히 가을을 맞이하는 메리골드와 부추꽃
메리골드는 지난해 냇가 정원 쪽에 심었던 꽃인데 꽃씨가 날려 이사 온 것인지 올해는 산 쪽 정원 모서리에 피었습니다. 처음 날 때는 잡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뭔가 예쁜 꽃이 필 것 같다는 어떤 감각이 말을 걸어와 뽑지 않았는데, 늦여름 골드 자태를 뽐내며 의연히 피어있습니다.
부추꽃은 의외로 참 화려합니다. 부추가 세서 못 먹겠다 싶을 때, 그 아쉬움을 달려주듯 가는 대 위로 새하얀 점점이 꽃이 얼굴을 내밀고 나와, 갈색 옷에 깜장 점을 달고 요맘때 찾아오시는 표범나비의 폭신한 침대가 되어줍니다.
긴 장마도 가고 볕도 찾아오고 하늘도 높아지는 입추, 이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름 내 크게 세력을 키워 이 마당을 호령하고 있는 풀과 나무와 잔디 기세에 눌러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지요. 풀도 나무도 잔디도 꽃도 '토가오고호' 작물들도 모두 내가 마지막까지 거둬야 할 아이들입니다.
잔디 깎기로 시작해봅니다.
마당 잔디를 올해 한 번도 못 깎아줬거든요, 그랬더니 여름을 지나 바닥에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처량 맞게 누워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족히 30센티는 되는 것 같아요. 뱀이 꽈리를 틀어 내 집하자 해도 깜박 모르고 지나갈 만한 상태입니다.
작년까지 수동 잔디 깎기를 사용했어요. 어설프게 사용해서인지 원래 이 정도 성능인 건지, 정말 수동으로, 힘으로 잔디를 뜯어내는 수준이었어요. 몇 번 밀고 다니다 끝내 낫으로 베기도 하고 가위로 자르기도 하고 정말 열악하게 잔디 관리를 했었어요. 이를 가엽게 여기신 옆집 아주머니께서 윗동네 창고에서 놀고 있는 기계가 있다 알선해주셔서 전기로 작동하는 잔디 깎기를 직거래로 구입했습니다.
짜잔~!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전선 정리만 조금 해가면서 마당을 이리 한번 저리 한번 왔다 갔다 하면, 제 모습을 찾은 잔디가 방긋 웃습니다. 깎은 잔디를 담아 올리는 큰 바구니가 있는 것도 너무 편리해요. 깎여진 잔디를 일일이 쓸고 닦을 일 없이 정말 말끔합니다. 이 좋은 것을 왜 여적 모르고 몸으로 손으로 잔디를 깎았던 걸까요? 그래도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땅에 코를 박고 잔디와 만나며 까쓸한 잔디, 부드러운 잔디 손끝으로 직접 느껴본 것도 참 좋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 BOSCH 잔디 깎기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오랜 장마가 가고 반짝 볕이 든 주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집안 문을 활짝 다 열어두고 습습해진 이불을 맨 먼저 마당 빨랫줄에 걸어둡니다. 휴우~ 이불들이 크게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세탁기를 돌리지 않고 탈탈 털어 햇볕에 그대로 걸어두기만 해도 뽀송뽀송해지는 햇볕 빨래, 시골에 살면 볕의 위대함을 느끼게 돼요.
마당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긴 빨랫줄,
시골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1. 여름과 가을의 인수인계 현장, 목수국 맞이
2. 올해 첫 잔디 깎기, 드디어 전기 맛을 보다!
3. 습한 기운 저 멀리, 햇볕 빨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