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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Aug 21. 2022

대서,특필! 수국과 가든 아치

다사다난했던 올여름 대서를 특별하게 기억해 주세요.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대서(大暑) : 세자의 공부도 늦출 만큼 더운 여름 24절기의 열두째인 대서(大暑, 큰 더위)는 일 년 가운데 가장 더운 때입니다. 대서를 셋으로 나눠 초후(初候)에는 반딧불이가 반짝거리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뜨거워지며, 말후(末候)에는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출처: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반딧불이, 습하고 뜨거운 흙, 큰비

한 책에서 대서를 표현하는 이 단어들 중 반딧불이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습한 흙과 큰비는 올해 대서 즈음에 제대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은 좀 별나네요. 마른 비-굵은 비 반복되는 긴 장마가 끝나나 싶더니 정말로 큰 비가 중부 지방을 강타했습니다. 강남역이 잠기고 한강변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늘 달리던 둘레길이 막히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양재천 다리가 끊겼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비 피해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이거나 처음인 것 같아요.


우리 집 텃밭과 정원도 큰 비에 놀랐나 봐요.

장마 후에는 텃밭 작물들과 잡초들이 한데 엉켜서 누가 더 크게 뻗치나 경쟁을 하며, 온 마당을 정글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인데, 올여름은 큰 비의 기세에 눌렸는지 '풀 죽은' 모습입니다. 정말 풀이 죽었어요. 이번에 선녀 나방과 총채벌레가 워낙 극성이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 여름의 빌런, 잡초들도 병충해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나 봅니다.

게으른 정원사도 풀이 죽었습니다. 안 그래도 텃밭 정원 아이들이 크게 자라 감당이 안 되는 여름인데, 병충해와 큰 비까지 강타하니, '나 몰라라' 손을 그냥 놓아버렸습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또 언젠가는 이 상황을 수습할 힘이 나겠지, 풀 죽은 스스로를 다독거려 봅니다.


이 와중에.. 수국, 수국!

하얀 꽃방울을 품다가..하나 하나 틔워낸 연분홍빛 수국, 수국!

우리 정원에 온 지 삼 년째, 작년까지 얼굴을 내보이지 않던 수국이, 올해 꽃을 피워냈습니다.

병충해에 물난리 난 이 와중에 수국 꽃이라니요! 와! 손 놓아버린 정원에 한 줄기, 아니 두 줄기 꽃입니다. 작년까지도 잎이 빨간 점으로 뒤덮여 늘 잔병치레하던 수국이었거든요. 꽃은커녕 이러다 겨울을 못 지나고 떠나겠구나 싶던 아이였는데, 올 겨울을 용하게 이겨내고 큰 병 없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드디어 꽃을 피워냈습니다. 뭐든 때가 있다더니, 자기의 때를 잘 기다렸다 건강하게 꽃을 피워준 수국이 너무나 반갑고 기특합니다.

게으른 정원사도 잡초, 병충해, 큰비를 이겨내며 24절기 때때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정원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겸허한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려봅니다. 물론, 몸과 마음을 열어 노력해야겠지요.

이 아이들도 좀 봐주세요. 옥잠화에 긴 줄기대를 만들더니 연보랏빛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여름까지 계속 얼굴을 내미는 기특한 장미


이 게 맞는 걸까, 하면서도

새 아이들을 들여왔습니다. 있던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손 놓아버린 정원의 헛헛함을 이렇게 달래도 되는 걸까요? 마을 종묘사를 지나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다년생 꽃 두 아이와 상추 몇 개를 즉흥적으로 데려왔습니다. 잡초 무성한 정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아주니 마음이 좀 복잡하긴 한데요, 그래도 새로 만나게 된 버베인, 플록스와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좌) 버베인, 플록스, 생소한 이름을 잊기 전에 이름표에 꽃이름을 적어 흙에 쏘옥 꽂아놓습니다. (우) 이름도 모습도 맛도 너무도 익숙한 꽃상추 열 개!


여름 꽃은 보랏빛이 많아요.

분홍빛 꽃도 블루톤 계열이라 해야 할까요, 은은한 보랏빛이 베어납니다. 무성한 잡초 사이에 슬그머니 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도 보랏빛 기를 뿜어냅니다.


보랏빛 꽃들, 보랏빛 향기,
보라! 빛이 나는 생명들



이 대서를 특별하게 기록해 줄 가든 아치

정원 뒷 줄에 혼자 줄을 늘여 트리고 있는 덩굴장미를 지지해줄 가든 아치를 설치했습니다. 우리 정원의 첫 시설물이에요. 키가 많이 큰 소나무들과 높은 하늘을 떠받치듯 동그란 윗 테가 참 예쁩니다.

초록 초록 길쭉한 줄기와 잎들 사이로 하얗고 둥근 대가 보이니, 뭔가 정리되어 보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돌과 나무만 무성한 큰 산속에서 표지판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위안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자연 속에서,
사람 손길이 닿은 인공 시설물을 만날 때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웰컴 투 아워 가든! 동그란 아치 아래 나무 의자를 두니, 앉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이 깃듭니다. ^.......^



게으른 정원사의 '대서' 활용법

1. 여름 꽃, 수국 만나기

2. 정원을 정원답게, 가든 아치 설치하기

3. 게으름 피우다, 대서특필? 브런치 뒤늦게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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