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물에 접속한 7월, 백합 향기 시그널이 울립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소서(小暑) : 하지와 대서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7월 7일 무렵이다. 소서는 작은 더위라는 뜻으로 태양의 황경이 105°인 때이다. 한국은 장마전선이 걸쳐 있어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온다. 농사에 쓸 퇴비를 준비하고 논두렁의 잡초를 뽑는다. [출처: 다음백과]
본격적인 여름 7월에 접어들자 텃밭 작물들이 영글기 시작합니다. 주말마다 찾는 텃밭이라 평일에 보살펴주지 못한 가지는 땅에 코를 박고 가로로 자라 있고, 호박은 통나무만큼 크게 자라 있기도 해요. 크고 무거운 오이가 가느다란 오이 줄기에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무슨 힘으로 저 큰 오이를 받치고 있는 걸까? 근데 올여름은 토마토가 빨갛게 영글지 않고, 얼굴이 몇 주째 파랗게 질러있습니다.
아무래도 긴 장마 동안 이 여름을 장악한 총채 벌레 때문일 거예요.
선녀 나방의 날갯짓이 잦아들자 곧바로 작물과 나무와 마당을 뒤덮은 총채 벌레의 하얀 흔적. 잎과 줄기와 열매에 온통 하얀 가루가 묻어 있어요. 사실 아직도 여름에 떼로 출몰하는 이 벌레들의 정체를 정확히 잘 모릅니다. 선녀 나방이 총채벌레 같기도 하고, 총채벌레가 선녀 나방 같기도 하고, 둘 다 하얀 가루를 뿌리고 다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조금만 지나면 곧 없어지겠지 하고 버티곤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극성입니다.
흐리고 습한 날이 한 달 내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 날, 물폭탄을 쏟아내는 하늘. 여의천, 탄천, 양재천 즐겨 찾는 하천 도로가 물이 잠겨 길이 끊기고, 큰 비를 맞으며 걷고 달리는 '우당탕탕' 7월입니다. 비를 참 좋아하는데, 큰 비는 참 무서워요. 하천 작은 다리들이 끊기고 표지판이 넘어지고, 큰 물이 덮친 뒤 흙더미에 묻힌 작은 나무와 꽃들.
도시에 내리는 큰 비도 두렵지만, 시골에서는 산사태와 낙석을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차가 지나는 도로에 큰 돌이 떨어져 있거나 물이 가득 차올라 있어 지나지 못하는 때도 종종 만나게 돼요.
하지만 시골집 안에 있으면 달라요.
우리와 닿는 세상을 온통 물소리로 덮어버리는 물의 마법에 빠져 근심도 잡념도 없는 그야말로 '물'아지경(무아지경)이 됩니다.
다 흘러가는 거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큰 물소리가 있는 이 여름을 좋아합니다.
습기가 온 세상을 덮어도 마음은 눅눅해지지 않아요.
오랜 기간 꽃몽우리를 품고 있던 백합꽃이 드디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큰 비에도 묵묵히 꽃을 피워내고 짚은 향기를 내뿜습니다. 방 안에 있어도 백합 향기가 은은하게 몰려와요. 그 날카롭고도 고혹적인 백합 향기가 문득문득 묻어 나올 때면 장마 기간의 축축한 공기도 다시 뽀송뽀송해지는 느낌입니다.
백합 향기는 왜 이토록 짙을까?
미지의 시그널을 보내는 듯한 신비로운 향기에 취해봅니다.
'장마를 버텨낼 결심'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 제목을 따다 적어봅니다. 이번 장마는 참 길어서 끝까지 무사히 잘 버텨내 보리라 결심을 해봅니다. 하얀 발레들의 습격, 스멀스멀 올라오는 곰팡이, 거친 비바람도, 저기 흐르는 물소리처럼 이 또한 잘 지나갈 거예요.
1. 수풀에 숨은 '토가오고호' 찾아 따먹기
2. 큰 물소리 들으며 근심 흘러 보내기
3. 장마 끝나고 할 일 생각해두기 (너무 자라 누워있는 잔디 깎기, 마당을 뒤덮은 나뭇가지 잘라주기 등등등 할 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