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걱정을 전하기가 어려워진다 날이 갈수록.
다급하게 나갈 준비를 하는 엄마를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바라보다, 연유를 물으니 엄마와 같이 일하는 동료분이 아프단다, 그것도 꽤나 심각하게.
다가오는 엄마의 출근 날엔 같이 일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태라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고, 그래서 잠시 다녀오겠다며. 한껏 심란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엄마를 보며 그럼 엄마는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심하게 아프신 그분은 괜찮은지는 두 박자 지나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아프신 분이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 엄마는 지금도 버거운 일을 더 많이 짊어지고 해야 할 텐데,
작년 말부터 급격하게 나빠진 허리에 더 무리가 가면 어쩌지라는 생각만이 빙빙 돌았다.
그렇게 엄마 걱정으로 빙빙 돌아 그제야 그분 걱정이 스쳤다.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어야 했던 그분은 얼마나 아프실는지, 얼마나 무서우셨을는지. 그렇게 아픈 그분을 찾아가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떠할지.
그분이 걱정스럽다. 엄마와 함께 고된 일을 같이 해오던 분이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도 되고,
갑작스러운 아픔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불안하게 다가오니까. 그럼에도 이 걱정을 오롯이 전하기엔 내 사람, 그러니까 엄마에 대한 걱정이 솟아올라 전할 수가 없다.
그저 전할 수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오래 아파서 엄마가 더 힘들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분을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내 사람에 대한 걱정에 애꿎은 원망이 자리 잡으려는 기분이 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아프신 엄마의 동료보다 엄마를 더 걱정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 건 내 팔이 너무 굽어버려 다신 펴지지 않을 느낌도 같이 들어서일까. 여전히 나는 엄마 걱정이 앞서지만, 엄마가 돌아오면 그분에 대한 걱정을 전해드려야지 싶다.
그렇게 오롯이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나의 걱정이 엄마와, 그분에게도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