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숨겨둔 것마저 들춰내는 것부터가 정리의 시작.

by 제밍






오늘은 조금 더 일찍 도착한 걸음, 그렇지 않아도 텅 빈 사무실에 가장 먼저 컴퓨터 전원을 켜는 건 열에 아홉은 나였음에도. 바닥까지 깔린 적막함을 깨우는 건 철컥, 서랍장을 여는 열쇠소리.


퇴사를 코앞에 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서랍장 정리 시간을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으로 정한 건, 비록 기억에 남고 퇴사 후에도 가져가서 두고두고 볼만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흔적은 있을 리가 없고 탈탈 털어봐야 먼지만 가득이겠지만 그래도. 설령 그런다 해도 찬찬히 보면서 정리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서랍 첫 번째 칸 널브러져 있는 건 반정도 쓴 대일밴드와 파스, 너덜 해진 손목보호대, 빈 알레르기약통과 언제 지어먹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약봉투 하나. 쓰레기봉투에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되돌아보니 다치기도 아프기도 참 꾸준도 했네, 그땐 정말 서러웠겠지만 이렇게 보니 헛웃음도 나고.


서랍 두 번째 칸 드문드문 놓여있는 건 잠 깨려고 먹은 화한 사탕, 기운 없을 때 입으로 욱여넣던 달달한 초콜릿이나 젤리. 그땐 맛도 모르고 먹었나, 이렇게 하나 까먹어보니 세상 달달한 게.


서랍 세 번째 칸 덩그러니 놓여있는 다이어리 속 막 입사하고 긴장된 손으로 적었던 오랜만에 펼쳐보는 메모들. 그땐 마냥 어려워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나름 잘하고 있었네.


어느새 가득 찬 쓰레기봉투에 이곳에서 자라났음에도 여기에 내려놓고 가야 할 마음들 또한 같이 여며 풀리지 않게 단단히.


툭-하면 밀리지야 않겠지만, 기분만큼은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스케이트처럼 가벼워진 서랍장을 빤히 한번 봐주고, 이렇게 홀가분해질 나를 또 기대해 보며.

고요하고 적막하며 홀로 안온했던 서랍정리시간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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