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로 갈까? 스페인 철도(Renfe)를 타고 마드리드 근교에도 한번 가봐야 하는데 아직 예약하는 방법도 모르니 오늘도 마드리드 시내를 다닐 수밖에 없다. 레이나 소피아미술관으로 가기로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반팔을 입고 숙소 건물을 나섰는데 바람이 쌀쌀하다. 마치 초겨울 날씨 같이 바람이 차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긴팔이고 반 팔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계절은 4월 중순. 오후가 되면 태양이 작열하지만 오전 아침은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든다. 확실히 한국과는 기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아침에는 초겨울이고 오후에는 뜨거운 여름이고 그렇다. 나는 긴팔 재킷을 입으려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재킷을 걸치고 다시 나와 길거리 가판대에서 시티투어버스티켓을 구입하였다. 마드리드에서는 마드리드시티투어버스와 빅버스가 대표적인 시티투어버스인데 주로 마드리드시티투어버스를 이용했다. 두 종류의 시티투어버스 모두 저상버스이고 장애인이 타기에 편하게 되어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시티투어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첫 번째 버스가 왔는데 줄을 선 사람 중 일부만 타고 버스는 그냥 출발한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근에 서있던 다른 중년 남자에게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니 그 남자는 단숨에 ‘Full’이라고 답변한다. 아마 버스가 만원이어서 그냥 출발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잠시 뒤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출발하여 마드리드왕궁 정원을 지나고 아토차광장에 이르렀다. 여기서 내리면 근방에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다. 골목길을 조금 걸어가니 특유의 모습을 한 건물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이니 건물 외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내부통로와 연결한 모습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전경
미술관 전시장 입구에서 직원에게 뮤지엄패스(Paseo Del arte)를 보여주니 별도의 입장권과 교환해 오라고 한다. 입장권을 받고 직원에게 휠체어가 필요하다고 하니 휠체어를 가져왔는데 오른쪽 팔 거치대가 부서져 있었다. 다른 휠체어로 바꿔달라고 하여 새로운 휠체어를 가져왔는데 뻑뻑해서 잘 나가지 않는다. 소피아미술관은 오래된 시설이어서 그런지 비치된 휠체어도 시원치 않았다. 그냥 걸어서 다닐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많이 걸어야 될 상황이 예상되어 불편하지만 그냥 사용하기로 하였다.
속이 출출하여 무언가로 뱃속을 채워야 할 것 같아서 직원에게 레스토랑 위치를 물어보니 건너편 건물 지하에 있다고 하는데 한참이나 가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바닥도 울퉁불퉁하여 휠체어로 움직이기에는 성가스럽다. 일단 관람을 하고 요기하기로 하였다.
1층 전시장을 보니 내가 모르는 화가들의 그림들이 많았고 어떤 코너는 그림인지, 포스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그런 전시물도 있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내 눈에는 이게 뭔지 저게 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미술이라는 장르가 워낙 표현 기법이 다양해져서 이런 것도 미술인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 개념과 많이 다르다.
나는 여기서 다른 그림은 못 보아도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게르니카 그림의 위치를 물어보니 뒤편 건물 2층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휠체어를 열심히 굴렸다. 연결 복도를 지나 뒤편 건물로 들어가 구획된 방을 몇 개 지나니 저 멀리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구나! 어느 미술관이나 소문난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파리 루브르에서는 모나리자 앞에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듯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르니카 그림 앞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막아선 상태라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구도가 잘 잡히지 않았다. 게르니카 그림 자체가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로 큰 사이즈라 멀리서 찍어야 하는데 앞에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 찍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맨 앞에 위치하고서도 스마토폰을 조절하여 대충 그림 전체를 사진에 담아 올 수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림 전체가 약간 삐딱하게 찍혔다.
우리가 게르니카 그림을 사진에서 볼 때는 별로 충격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직접 보니 확실히 비극적인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이 그림은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을 그린 것이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 부러진 칼을 들고 저항하다가 쓰러진 사람, 말의 혀에 포탄 같은 것이 박혀서 울부짖는 듯한 모습 등. 그림을 실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카소(Bust of a smiling woman)
미로, 달리의 그림도 보인다. 미로와 달리는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이다. 달리의 그림에서는 시계가 자주 보이고, 미로는 꿈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달리의 그림은 망측한 그림도 많다. 입에 담기 어려운 '마스터베이션'이라니! 그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성적인 집착을 종종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어렵다. 어쩌면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인간 모든 행동의 동기인 리비도(성적 욕망)를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창밖을 보고 있는 자기 여동생의 뒷모습을 그렸다는 달리의 그림도 보인다. 그림 속의 그녀는 가보지 못한 먼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련한 옛날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관능적인 느낌도 날 수 있는데 자기 여동생을 그렸다니 그러한 느낌을 담지는 않았겠지! 혹시 모른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선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으니! 이 그림은 이미 책자를 통하여 널리 알려진 그림인데 원화를 보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살바드로 달리(거대한 마스터베이션)
달리(창가에 서있는 소녀)
호안 미로
소피아 미술관은 옛날 건물을 개조해서 꾸민 미술관이라 여러모로 불편하다. 건물 입구에는 경사로가 있지만 다른 건물로 접근하기 위하여 몇 개의 계단이 있는 경우도 있다. 반나절을 미술관에서 보내는 것은 지루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그만 보려고 하다가 내가 언제 여기에 다시 오겠냐는 생각이 들어 미술관 내 식당에서 무언가 요기를 하고 계속 관람하기로 하였다.
미술관 식당이라고 하지만 별채 건물의 식당이었다. 한참이나 가야 했다.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을 보니 음식에 대한 사진이 없어 어떤 내용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곧 여자 종업원이 QR코드를 찍으라며 종이 한 장을 가져온다. 요즘은 참 희한한 세상이다. 메뉴판도 필요 없이 QR코드를 찍어 보는 세상이 되었으니!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보니 감자튀김이 보여 주문하였다. 감자튀김 양이 제법 많다. 감자도 혈당을 올리는 음식이라 주의해야 할 음식이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입맛에 맞아 전부 싹쓸이하였다.
소피아 미술관 카페테리아(감자튀김)
식사를 한 후 다시 미술관에 들어갔다. 어떤 코너는 사진위주로 전시되어 있는 코너도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영어로 된 설명이 없고 스페인어로만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술관을 나오니 미술관 앞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이 미술관은 마드리드 시민이나 학생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보인다. 늦은 오후 마드리드 사람들의 소박하고 평온한 일상생활이 느껴졌다.
햇볕은 쨍쨍하고 미세먼지가 없으니 공기는 쾌적하다. 습도가 높지 않으니 피부에 무언가 달라붙어 끈적거리는 느낌이 없어 좋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볼까 생각하였으나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