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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 Oct 11. 2024

톨레도에서 길을 잃다

톨레도에서 죽도록 고생하다

'톨레도를 보기 전에는 스페인을 말하지 마라'


스페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천년 고도 톨레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톨레도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여행사에서 투어광고하는 것처럼 그저 반나절 동안 인증 사진이나 한판 찍고 돌아올 만한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드리드에서 10여 일 동안 있으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곳이 톨레도라 하여 엄두를 내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톨레도행 Renfe를 예약하였다. 스페인 생활에 익숙하신 민박집 사장님이 예약을 도와주셨다. Renfe 란 스페인 국영철도회사를 의미한다. 예약할 때 휠체어서비스(장애인이 기차에 탑승할 때 역무원이 휠체어로 도와주는 서비스)도 예약하였다.


출발지는 아토차역. 아침에 택시를 타고 아토차역에 도착하였다. 아토차역 부근을 지나간 적은 있지만 내부는 처음 가는 장소라 촌놈이 처음 서울역 구경 온 것처럼 한참을 헤매야 한다. 겨우 발권하는 기계를 찾기는 하였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느 화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옆에 있던 젊은 친구로부터 발권하는 요령을 배웠다. 초기 화면에서 언어를 ‘English’으로 선택하고 발권번호를 입력하였더니 비행기 보딩패스처럼 생긴 티켓 두장(가는 것, 오는 것)이 나온다.


일단 발권이 완료되었으니 휠체어서비스 안내센터를 찾으면 된다. 한참 진땀을 빼고 나서 겨우 휠체어서비스센터를 찾았다.


휠체어서비스센터 담당 직원은 검은 피부에 안경을 쓴 여직원인데 중남미 출신 같아 보인다. 스페인어로 워낙 빠르게 말을 하니 알아먹지 못하겠다. 천천히 말을 해도 알아먹지 못할 텐데 빠르게 말을 하니 더욱 알아먹을 수없다. 아예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포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소정의 양식에 무언가를 기재하는데  그 양식의 문구도 알 수없다.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니 당신이 알아서 해주시오 그런 심산으로 열차 티켓을 그녀에게 주니 그녀가 알아서 무슨 양식에 기재를 한다.


휠체어서비스센터에는 많은 노약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끔씩 베이지 색의 유니폼 상의를 입은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자기 담당고객을 한 명씩 모시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창구 직원은 나에게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으로 손짓을 하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담당자가 데리러 오겠지 생각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하였다.

아토차 역 대합실                                                                              휠체어서비스센터 대기실


열차 출발 시간이 오전 12시 14분인데 12시가 거의 다 되어 흑인 여자가 나타나고 창구직원은 나를 가리키며 흑인여자에게 뭐라 한다. 드디어 내가 출발하는 차례가 되었구나! 그 흑인 여자는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같이 객차에 승차하여 객실번호와 좌석까지 확인하고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후 돌아간다. 그들의 서비스 정신은 확실하네! 나는 그녀에게 ‘Gracias’라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자주 써먹을 말 'Gracias'는 확실히 배워둘 필요가 있다.


이윽고 기차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덜컹거림 없이 승차감이 좋다. 처음에는 속도를 높이지 않더니 10분 정도 지나니 속도를 높인다. 마치 항공기가 이륙 직전에 내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의 느낌이다. 기차 밖의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다. 산이나 울창한 숲은 보이지 않고 가끔 나지막한 구릉지 정도가 보인다. 높지 않은 나무가 보이기도 하고 나무 없이 흙의 맨살이 드러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아! 스페인 땅은 이렇구나!


정확히 30분 만에 톨레도 역에 도착하였다, 창밖을 보니 역무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 그 역무원은 나를 태우고 가면서 끊임없이 누구와 통화를 한다. 때로는 나를 그냥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세워놓고 한참 동안 통화를 하기도 하였다.


톨레도 역사 내부


톨레도 역은  작은 역이었다. 역사 안팎의 무늬를 보니 확실히 이슬람 냄새가 난다. 이베리아 반도가 800 동안이나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이슬람의 흔적이 확실히 남아있다. 톨레도는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평일이어서 그런지 이용객이 붐비지는 않는다. 하차하는 다른 승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 나왔으므로 더욱이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톨레도역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티켓 값은 25 유료. 사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 비하면 볼 것이 빈약하기 짝이 없어서 비싼 편이다. 내가 마드리드에서 이용했던 시티투어버스는 ‘Madridcitytour’이고 톨레도에서의 시티투어버스는 ‘Citysightseeing toledo’로 운영회사가 다르긴 하다.


잠시 후 시티투어버스가 도착하였는데 승객은 나 외에 한두 명 정도였던 같다.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미 이 버스가 순회하는 코스를 인터넷으로 미리 보아왔던 터라 버스 바깥 풍경은 그리 생소하지는 않았다. 코스는 뻔하였다. 톨레도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타호강 바깥길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오디오가이드가 있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버스 안쪽벽에 부착된 언어선택 다이얼을 돌려보았는데 한국어는 들리지 않는다. 시티투어버스 오디오가이드라는 것이 버스 좌석옆 차체 쪽에 설치된 단자에 이어폰잭을 꽂고 버튼을 눌러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등 언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티투어버스에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설치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안내 팸플릿에는 분명히 한국어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된다는 의미로 태극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보이는 풍경


시티투어버스는 타호강을 따라 한참이나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정차한다. 운전기사는 여기서 5분 정도 쉰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지점이 톨레도의 알카사르 궁전을 제대로 촬영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으로 보인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타호 강변에서 보이는 알카사르 궁전

잠시 후 다시 승차하여 버스 왼쪽 좌석에 앉았는데 운전기사가 나에게 오른쪽에 앉으면 view가 좋다며 오른쪽 창가에 앉으라고 권한다.


시티투어버스는 강을 사이에 두고 둘러싼 바깥쪽 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다리를 지나 섬같이 생긴 중심가로 들어간다. 비사문이라는 성문을 지나 경사지고 좁은 골목길을 올라 이 버스의 종점인 알카사르궁전까지 왔다.


여기서 요기도 하고 화장실 볼일도 보아야 한다. 알카사르 궁전 3층(몇 층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카페테리아에는 마땅한 식사 메뉴는 보이지 않는다. 딱딱한 빵조각에 소스가 들어가 있는 것 밖에 없어 그것으로 때웠다. 사람들이 3층 창밖으로 무언가 전경을 보고 있다. 여기 위치가 높아서 전망대구실을 하는 걸까, 창밖을 보니 가까운 거리에 톨레도 성당 같은 건물이 보이고 부근의 마을이 보인다. 성당 외 높은 건물은 없고 지붕만 보인다.

알카사르 궁전 3층 식당에서 보이는 톨레도 성당


식사 후 1층 안내하는 여직원에게 이 부근에 더 구경할 거리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무기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한참이나 걸어가게 되어있다. 무기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약간 경사진 길인 것 같고 피곤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다. 슬슬 걸어서 톨레도의 중심광장인 소코도베르광장에 이르렀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그냥 돌아갈까, 톨레도까지 왔는데 톨레도대성당은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결국 내가 언제 여기에 또 오겠냐는 생각이 들어 톨레도성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톨레도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운행하는 꼬마 열차
소코도베르 광장

택시를 잡아타고 톨레도 성당으로 간다. 택시는 한참이나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던 길 반대방향으로 내려와 외곽순환도로를 돌 듯이 한참 돈 다음 언덕 위 좁은 길로 올라간다. 결국 5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수 킬로 돌아온 것 같다. 길이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그렇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리를 모르는 외국인이니 바가지요금을 씌우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지리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모르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택시는 톨레도 성당 입구까지 왔다. 톨레도성당은 좁은 골목을 지나 위치하고 있는데 성당 주변에는 넓은 공간은 없고 전부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좀 답답하다.

톨레도 성당 입구  


톨레도 성당 내부


성당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성당 안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입구에서 직원이 티켓을 구입하라고 한다. 티켓을 끊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어둡다. 사람들이 겨우 보이는 정도이고 성물을 모셔놓은 부위나 조각들이 모여있는 부위는 불빛이 비추고 있다. 돌아갈 기차 시간이 있으니 마음만 급한 지라 대충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왔다. 이럴 거면 괜히 티켓을 끊었나 싶기도 하다.


문제는 돌아올 때 생겼다. 택시를 타려고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성당 앞 포장마차 같은 데 물어봐도 여기서는 택시를 잡기 어렵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와서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관광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택시를 타고 시골 한적한 곳으로 갔는데 돌아올 때는 택시가 없어 탈 수 없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시티투어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돌로 된 타일길을 한참이나 걸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지나가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뾰족한 수가 없고 무작정 기다리느니 슬슬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한다.


슬슬 걷기로 하였다. 길가에 서서 구글 지도상 나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갔다. 조금이라도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면 한참이나 돌아서 가야 할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톨레도 구시가지는 매우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고 내리막, 오르막이 반복되는 길인데 바닥은 돌로 된 타일이다. 나같이 목발을 짚고 걷는 사람에게는 쥐약이다.


앞서가는 젊은 친구가 보이길래 알카사르 궁전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나에게 길을 알려주고 한참 앞서가다가 좁은 삼거리에서 멈추더니 다시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안내해 준다. 참으로 친절한 젊은 친구이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알려준 길을 보니 매우 좁은 길에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계단으로 되어있다. 하필이면 지름길상황이 좋지 않다. 나는 도저히 그 길은 자신이 없이 좀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였다.


골목길을 여기저기 헤집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TAXI'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알고 보니 내가 톨레도 성당으로 가느라도 택시를 탄 장소이다. 이제 다 왔구나! 택시를 타는 장소가 나왔으면 시티버스 정류장이 바로 보일 것이다. 결국 택시를 탄 장소에서 톨레도성당까지는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택시는 그렇게 많이 돌아서 간 것이다. 나중에 구글지도로 확인해보니 보니 직선거리로는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아직 톨레도에서 마드리드행 기차 시간은 한 시간 이상 남았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톨레도 역에 도착하였다.  기차 출발 시간은 7시 15분, 7시경 되니 개찰구를 오픈하고 짐을 검색한다. 기차는 매끄럽게 움직인다. 객차의 좌석은 앞자리와 뒷자리가 서로 마주 보게 앉게 되어 있다. 내 앞자리에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앉아있다. 기차 밖의 풍경은 올 때와 비슷하다.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구릉지이거나 벌판이다.



돌아오는 기차 밖의 풍경

톨레도를 대충 보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하루 이틀 정도 머무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좋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진땀을 빼서일까, 피곤하고 어깨도 아프다. 그날은 마드리드로 돌아와 무조건 쉬기로 하였다.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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