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인천대교를 건널 때쯤 되면 벌써 가슴이 설레인다. 마음은 벌써 비행기를 타고 있고 창밖의 구름 위 하늘을 보고 있다. 공항 대합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캐리어를 끌고 바빠 움직이고 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면 가끔 쓸데없이 차를 끌고 인천 공항으로 가보곤 한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로 사라지는 비행기를 보면서 꿈을 꾼다.
나도 나 홀로 멀리 떠나고 싶다!
누군가 말하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그러나 아무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할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범부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은 넓고 갈 데는 많다고.
요즘처럼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인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가니 그동안 막혔던 봇물이 터져 나오 듯이 명절이나 연휴가 될라치면 인천공항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럼에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해외여행을 엄두내기 힘들다. 비용이나 언어 문제도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지에 가서 이동하는 일,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일 등 걸리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 가족이나 보호자가 동행할 경우에는 한결 쉬울 수 있으나 장애인이 나 홀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공직생활 동안 잠깐 해외연수를 다녀오면서 해외여행의 맛을 보게 되었다. 런던, 스톡홀름, 코펜하겐을 다니면서 세상에는 얼마나 볼거리가 많고 흥미로운 일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책이나 TV에서나 보던 런던 템즈 강의 유람선을 타보고, 코펜하겐의 인어공주를 직접 보면서 이런 세상이 정말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후 유럽여행을 여러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공직생활을 마치고 좀 더 느긋하게 살펴보는 세계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보행에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일반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단체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은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형편상 나 홀로 여행을 궁리하게 되었다.
인터넷이나 여행안내서를 뒤지면서 현지 공항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현지에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 두 다리가 성성한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확인하고 궁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튜브에 접속하여 뮌헨 지하철에 승차하는데 계단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했고,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탑승할 수 있는 택시회사를 검색하여 메일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마 황제들의 조각상을 보면서 내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자각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빈 동전 바구니를 앞에 놓고 하루종일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고민할 문제는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힘들지만 여행을 가는 이유이다.
나 홀로 여행이지만 나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동반한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나가 있고 그런 나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다. 두 개의 나가 서로 대화하면서 여행하는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방문한 도시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과정, 현지에서의 이동, 미술관 방문 등에 있어서 Accessible(장애인 편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다만 기행문 형식으로 쓰다 보니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장애가 있으면서 나 홀로 유럽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고자 나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여행기를 쓰기 위하여서라도 또다시 멀리 갈 궁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