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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 Jan 24. 2024

나치의 흔적을 접하다

다하우 수용소에서 하루

‘루프트 한자’     


독일의 대표적인 국책 항공사이다. 나는 생전 처음 루프트한자를 타게 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가장 먼저 하고픈 일이 뮌헨으로 가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뮌헨으로 가는 직항은 루프트한자 밖에 없다.  직항이 아닌 경우 환승하는 시간을 맞추는 것은 보행이 부자유한 나로서는 불안하였기 때문에 직항을 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은 나 홀로 목발을 짚고 떠나는 여행이다. 그전에 직장에서 또는 일행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간 적은 있으나 나 홀로 여행은 생전 처음이다. 앞으로 나 홀로 세계를 돌아다니려면 나 홀로 다니는 훈련이 필요하기도 했다.

   

뮌헨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뮌헨 올림픽 기간 중에 일어난 ‘검은 구월단 테러’ 사건과 유명한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뮌헨에 가서 많이 걸어야 될 상황이 예상되어 수·전동 겸용 휠체어를 가져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루프트한자 측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까다롭다. 수·전동 겸용휠체어에 부착되는 배터리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서류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서는 이런 문제가 잘 통과되었는데 루프트한자 측에서 이렇게 까다롭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영어 실력이 짧은 나로서는 번역기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서 루프트한자 측 담당자와 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는데 결국 나의 능력으로서는 루프트한자 측에서 요구하는 안전을 담보하는 서류를 확보할 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독일이라는 나라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구나!

     

속상하는 일이었지만 되지 않는 문제는 빨리 포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결국 목발을 짚고 가기로 하였다.            

                                                                        

뮌헨 여행 중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뮌헨 인근에 있는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이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은 나치 시대 때 유태인을 수용하던 시설로써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버금가는 시설이다. 나는 일전에 아우슈비츠수용소에도 가본 적이 있는 터라 이와 비교도 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유태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수용소는 폴란드 크라쿠프 부근에 있다. 

    

뮌헨의 날씨는 대체로 흐린 날씨가 많았는데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으로 가는 날은 맑은 가을 날씨였다. 이런 비극적인 장소에는 이렇게 화창한 날씨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장소는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음산한 날씨여서 죽은 이들의 망령들이 막 살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어울리는 그런 장소이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은 뮌헨 중앙역에서 S-bahn을 타고 가다 다하우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S-bhan을 타고 내리는데 객차와 승강장 사이에 단차가 없어서 편했다. 다하우역에서 내려서 수용소기념관으로 가는 버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도 저상버스여서 별 문제가 없었다. 



다하우 수용소 입구에는 'Arbeit macht frei'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기만적인 문구로 알려져 있다.


다하우 수용소는 제법 넓어서 걸어 다니기 힘들 것 같았는데 안내소에서 무료로 스쿠터를 빌려 주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역시 이런 면에서 독일은 선진국이구나!

다하우 수용소 안내소에서 보행이 불편한 방문객에게 제공해 주는 스쿠터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은 전시물이 거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비하여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실물이 많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신발, 모자, 의족, 가방 등 유품이 있었다. 심지어는 희생당한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놓은 전시물도 있어 나도 모르게 숨이 멎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에는 그런 참혹한 광경을 연상시키는 실물이 별로 없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충격적인 유물이 많아서 여성들이나 어린아이들에게는 관람을 권하지 않는다.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 내용(저체온증으로 인한 인체 반응 실험, 항공기 압력강하에 따른 인체반응 실험) 도 보여서 사진을 찍어두었으나 보기에 불편할 것 같아 사진은 올리지 않았다.


때로는 비참한 진실은 확인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쉰들러리스트’에 나오는 참혹한 장면을 느껴보려면 아우슈비츠수용소나 다하우 수용소로 가봐야 한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영역일 것이다.


여기저기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장소를 후대에게 보여주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하우 수용소 건물은 전시관으로 쓸 몇 개의 건물만 남겨두었다.

  

해방 직후 헝가리 여인들이 수용소에서 출산한 아이들을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 여기서도 생명은 탄생한다!


  닭장 같은 유태인 숙소. 저기서 어떻게 지냈을까?  


  평화로운 가을 날씨! 과연 그런 비극적인 일이 있기나 한 것일까?


살아있는 자들이 이런 기념관을 지은 들 죽은 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살아있는 자들의 생각과 행위가 죽은 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승과 저승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무언가 있을까? 

독일 메르켈 총리가 아우슈비츠수용소에 가서 사죄한들 죽은 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후세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자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위안을 얻는데 그칠 것인가?     


루프트한자가 나에게 수·전동 휠체어에 관한 엄격한 서류를 요구한 것에 대하여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 긴 하지만 나는 그들의 처사에 대하여 이해하고 신뢰한다. 항공기 안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철저한 독일이 어찌하여 히틀러의 광기에 집단적으로 동조하여 유태인 수백만 명을 독가스 등으로 학살하였을까? 그들에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는 자국민 독일 아리안족에 대하여만 적용되고 유태인들은 아예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보였을까? 


나의 짧은 식견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가진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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