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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하 Jan 04. 2022

빛과 수렁 사이

6. 은정과의 만남

내가 은정이를 만나게 된 것은 집 앞에서 낯선 차에서 내리는 하영이를 발견한 어느 날 저녁이다. 이 낯선 차가 바로 연두색 모닝이다. 많은 색깔 중에 하필 연두색을 가진 모닝이라니 참 독특한 친구가 이 차를 끌고 다니겠다 싶었는데 그게 바로 은정이었다.


나를 발견한 하영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언니, 요즘 내가 새로 사귄 친구. 강은정. 이 친구는 참 착해. 도서관에서 집까지 날 데려다줬어."


" 언니를 부르지 친구 힘들게 왜 그랬어? 은정아, 안녕? "

이렇게 말은 했지만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영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누군가를 나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며 활기차진 동생이 너무 예뻐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전 강은정이에요. 하영이랑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요."


반갑고 반가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은정이와 하영이가 더 잘 지내도록 돕고 싶었다. 그 이후로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도록 하영이에게 용돈도 주고 뭔가 은정이와 하영이의 우정이 더더욱 생기도록 도왔다. 나도 나의 사생활을 하영이에게서 지키고 하영이는 하영이대로 나에게서 놓인 삶을 처음 살게 된 것이다.


나와 함께 지내면서 용돈도 나에게 받고 내가 구축한 사회에서 인형처럼 살아온 하영이가 답답해 보였는데, 드디어 자기 자신이 무언가 한 발을 내딛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놀랍고 기뻐했고 그게 하영이에게도 좋은 일인 줄 알고 그리 열심히 두 사람을 이어주었다.


너무나 나만 따르고 나만 바라보던 내 여동생이 스스로 세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이렇게 하영이가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기를 그렇게 성장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렇게 만든 세상이 그 아이에게 수렁이 될 줄은 전혀 모르고 말이다.


그때 내가 수렁으로 들어가는 하영이를 막아섰다면 하영이의 자유나 권리를 무시하면서 하영이를 내 삶의 굴레로 끌어들였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은정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은정이를 나의 세계로 데려왔다면 하영이는 더 잘 알게 되지 않았을까? 내 의문은 끝도 없다.


우리의 이 작은 시작이, 나의 하영이를 위하는 마음이 이렇게 어긋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건 정말 시작이었다.


이제 하영이는 나와 함께 하던 쇼핑도 은정이와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옷도 은정이처럼 입기 시작했다. 용돈도 받지 않고 갑자기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몸이 약했던 하영이는 대학원에 가기로 하고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자기도 돈을 벌겠다더니 취직이라는 것을 했다. 뭔가 점점 내가 모르는 하영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던 하영이는 칼 같은 정장들을 입기 시작했고,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집에도 밤늦게 들어오는데 공부한 것도 같고 직장에 다녀온 것도 같고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게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 보였다. 점점 하영이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영이를 보니 얼굴은 홀쭉하고 몸도 많이 마르고 뭔가 불안해 보이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살집이 가득한 건 아니지만 둥글둥글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수줍음 많은 인상의 하영이는 사라지고 내가 알던 하영이가 아닌 모습으로 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그날 나는 하영이가 너무 먹지 못하고 일하고 공부해서 그렇다며 한 상 거하게 차려서 먹이려고 했다. 없는 솜씨에 이것저것 차려놓고 잘 안 먹으려 하는 하영이를 먹이려고 은정이까지 불러서 거하게 먹이기 시작했다. 힘들면 일은 그만두라고 언니가 돈은 충분히 벌고 있으니 대학원 준비만 하라고 설득했다.


"하영아, 니 얼굴 좀 거울로 비춰봐 봐. 누군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보시면 언니가 혼나겠어."


" 언니, 지금 나 마르고 이뻐지니까 질투 나는 거야? 왜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언니 도움 말고 나 스스로 무언가 해내는 것 같으니 싫어? "   

내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는 하영이의 대답은 내 가슴에 못 박혔다.


"하영아, 언니의 걱정을 어떻게 그렇게 알아듣니? 그게 아니잖아. 이렇게 지내면 너 또 쓰러져. 몸이 약한 너 자신을 잘 돌보라는 이야기잖니. 굳이 힘들게 그렇게 지낼 이유가 없잖아. 은정아, 네가 하영이 좀 말려주라. 하영이 왜 그러니? "


은정이는 살포시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하영아, 은정이도 있는데 싸우지 말자. 언니는 그저 네가 걱정되는 거지. 니 앞길을 막는다거나 네 생각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야. 갑자기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너 정말 많이 피곤하고 힘든가 보다. 무슨 일이 있는지 언니한테 말할 수는 없니?"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하영이의 뒷모습을 보며 기가 찼던 그날. 강은정이 웃는 얼굴을 설핏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말리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 있던 강은정은 분명 웃고 있었다. 그때 그 얼굴을 나는 민망해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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