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블루스 재즈 등
20세기 대중음악의 태동에서 과거 기득권 음악인 고전음악 즉 클래식과의 관계를 별도로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한다.
대중음악의 등장은 클래식의 변형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였다.
대중음악이 클래식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은 흔히 들리지만, 실제로는 음악사와 사회사에서 매우 문제가 많은 서사다. 이런 설명은 음악의 본질적 성격 변화, 사회적 조건의 재편, 기술 혁신의 영향, 계급구조의 변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대중음악의 등장은 단순히 기존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되거나 희석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 산업적 환경, 사회적 긴장과 혼종성 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전혀 다른 예술 체계였다.
대중음악이 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기술과 산업의 혁명이 있었다.
레코딩 기술이 음악의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음악은 더 이상 공연장에서만 경험하는 예술이 아니라, 음반과 라디오, 영화, TV를 통해 반복 재생되고, 개인화된 청취가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음악의 중심은 작곡가의 악보가 아니라, 연주자의 목소리와 해석, 퍼포먼스로 옮겨갔다.
산업적으로는 음반사, 방송국, 공연기획사 같은 거대한 체계가 음악의 생산과 유통을 조직했다. 음악은 하나의 상품으로써 기획되고 마케팅되었다. 청중과의 감정적 소통, 세대 정체성의 매개, 스타 시스템의 발전이 대중음악의 특징을 이뤘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의 존재방식 자체를 바꿨다. 음악은 고정된 예술작품에서 벗어나, 유통망과 기술매체 안에서 재생산되고, 청중의 반응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완성되는 감각적이고 쌍방적인 예술로 자리 잡았다.
이 대중음악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중간에서 클래식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은 유럽 상류층의 후원으로 발전한 고급예술이었다.
악보를 중심으로 한 작곡가의 권위가 핵심이었고, 연주는 그 의도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예술은 위계와 규범을 유지하는 상징적 장치였고, 청중은 교양 있는 감식자로 자리매김되었다.
반면 대중음악은 도시 노동자, 이민자, 흑인 공동체, 식민지 출신 대중이 자발적으로 만든 음악 전통을 흡수했다.
즉흥성과 구술 전통, 혼종성이 중심이 되었고, 공연 현장의 에너지와 청중의 참여가 핵심이었다.
음악은 감정적 해방, 집단적 정체성, 사회적 메시지를 매개하는 실천이 되었다.
이 차이는 단순히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예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누가 예술을 해석하고 소비하는가.
어떤 산업과 기술이 예술을 매개하는가.
어떤 권력관계가 예술을 조직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에서는 다르게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클래식이 대중음악으로 변했다”는 설명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테제다.
이 테제는 기술 혁신, 산업 구조의 변화, 계급 구조의 해체, 권위의 붕괴, 문화적 혼종성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은폐한다.
마치 상류층 음악이 시대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두의 음악으로 발전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낸 독립적이고 정치적인 음악 문화를 클래식의 ‘하위변형’으로 축소해 버린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통념적 테제를 부정하는 안티테제다.
대중음악은 클래식의 희석된 버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출발점과 문화적 문법, 사회적 욕망을 가진 체계였다.
클래식이 가진 권위적, 재현적, 계급적 성격을 해체하고, 기술과 산업, 민주화된 청중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예술체제를 구축했다.
이 안티테제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대중음악을 클래식과 동일한 역사선 위에 놓고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관점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고, 음악의 사회적 생산양식과 권력구조, 문화정치를 다시 묻게 한다.
나아가 음악이 어떻게 우리 몸과 정서, 정체성, 공동체를 구성해 왔는지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대중음악의 등장은 진화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언어로, 새로운 청중과 정체성의 지형으로, 예술의 권위를 민주화하고 상업화한 문화사적 사건이었다.
이 전환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음악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읽는 언어로서, 권력과 저항, 정체성과 해방의 역사로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