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타리스트의 연주

모방에서 진정성으로

by 우주사슴

젊은 연주자들의 플레이를 가끔씩 접하다 보면 감탄하게 된다. 그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단순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배움과 훈련의 흔적이자 자신을 증명하려는 뜨거운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나 그 연주를 접할 때, 나는 어딘가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흉내 내기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비하적으로 들릴 수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그들의 연주는 종종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의 플레이를 변형하거나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다. 열정은 진정성이 있으나, 그 소리 속에 아직은 본인의 이야기가 담기지 못한 듯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단순하다. 연주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 기술과 기교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삶의 체험이 녹아 있어야 비로소 ‘나의 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연주를 들으며 스스로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정작 깊은 울림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주자는 대가의 손길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그 안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불어넣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모방과 창조의 오래된 긴장과 맞닿아 있다. 플라톤은 예술을 ‘이데아의 모방’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인간의 본성적 행위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새로운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가 대가의 스타일을 추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배움은 언제나 모방에서 시작되며, 모방 없이는 성숙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이 머무름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 세계로 도약할 것인지는 결국 시간이 결정한다.


나는 그들의 연주가 불완전하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삶을 충분히 살아보지 못했기에 담아낼 이야기가 아직 부족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의 현재는 모방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독창성을 준비하는 발판이 된다. 아직은 정체성이 불완전하더라도, 언젠가 삶의 무게와 기쁨, 상처와 회복이 그들의 손끝을 통과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흘러나올 소리는 단순히 대가를 닮은 그림자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울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단순히 놀라고 감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의 열정이 어느 순간 자기만의 언어로 승화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성숙하고 불안정하더라도,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이 언젠가 삶의 깊이를 통과하며 음악으로 변모하길 기대한다. 결국 진정한 연주는, 타인의 흔적을 벗어나 자기 생의 이야기를 드러낼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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