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태도

거리가 아니다.

by 우주사슴

SNS를 열면 다양한 해외의 멋진 랜드마크의 사진이 넘쳐난다. 어느샌가 해외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올해는 어디 다녀왔어?"라는 질문에 "제주도"라고 답하면 미묘한 아쉬움이 감지된다. 마치 진짜 여행은 해외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여행 산업, 미디어, 소셜 플랫폼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항공사와 여행사는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특정 장소를 소비 대상으로 포장한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이국적 풍경에 더 많은 노출을 준다. 여행 콘텐츠는 "가봐야 할 곳 100선"으로 규격화되고, 우리는 그 리스트를 체크하듯 여행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행의 본질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발견과 경험의 행위인데, 인증과 소비의 행위로 변질된다. 장소의 고유한 의미보다 그곳이 얼마나 유명한지, 사진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가 기준이 된다.


해외 여행이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히말라야의 압도적 경관, 에펠탑의 건축미, 그랜드 캐니언의 지질학적 시간성. 산토리니의 석양. 이것들은 분명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 경험이 강렬한 이유는 거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 때문이다.


첫째, 낯섦이다. 해외에 가면 모든 것이 낯설다. 언어, 음식, 거리 풍경, 사람들의 행동 양식. 이 낯섦이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일상적 자동 모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관찰하게 된다.


둘째, 문화적 의미 부여다. 에펠탑은 단순한 철골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파리, 프랑스, 근대성, 예술, 낭만이라는 문화적 서사가 겹겹이 쌓인 상징이다. 우리는 구조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망을 경험한다.


셋째, 시간과 비용 투자다. 해외 여행은 많은 돈과 시간을 요구한다. 이 투자 자체가 경험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렇게 힘들게 왔으니 특별해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


넷째, 단절이다.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면 정신적으로도 단절된다. 업무, 관계, 루틴에서 벗어나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요인들이 거리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낯섦은 가까운 곳에서도 만들 수 있고, 의미 부여는 장소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며, 시간 투자는 선택이고, 단절은 물리적 거리 없이도 가능하다.


한국에도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남한강, 제주 올레길, 경주 역사 유적, 전통 건축, 현대 도시 경관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들의 미학적·자연적 가치는 해외 명소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내 여행은 "그냥 국내"로 치부된다. 왜일까?


익숙함의 저주. 같은 언어, 같은 화폐, 같은 음식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낯섦이 약하다. 설령 처음 가는 곳이어도 "한국"이라는 범주로 묶이면서 새로움이 희석된다.


문화적 평가절하. 우리 문화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한옥의 아름다움보다 유럽 성당이, 한라산보다 알프스가 더 가치 있어 보인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친숙성 효과의 역설'이다. 가까운 것일수록 과소평가한다.


사회적 인정의 부재. "프랑스 다녀왔어"는 대화의 화제가 되지만 "강릉 다녀왔어"는 별 반응을 얻지 못한다. SNS에 올린 제주 사진보다 발리 사진이 더 많은 좋아요를 받는다. 여행의 가치가 경험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으로 측정되면서, 국내 여행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여행 산업의 편향. 여행 산업은 해외 여행에서 더 큰 수익을 낸다. 항공권, 숙박, 패키지, 환전 수수료. 모든 것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비싸다. 따라서 미디어와 광고는 자연스럽게 해외를 더 매력적으로 포장한다.


당장 어제만 해도, 나는 비 오는 날 지리산 종주길을 탐방했다. 일정을 바꿀 수 없어 그대로 진행했다. 10시간내내 비를 맞았고, 중등산화는 3시간만에 젖어버렸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맑은 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계속 움직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빗방울이 잎을 적시며 반짝였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칠 이끼 낀 바위가, 물기를 머금자 전혀 다른 생명체처럼 보였다. 시야가 제한되면서 오히려 가까운 것들. 나무 껍질의 질감, 빗소리의 리듬, 발밑 흙의 촉감, 맨들맨들한 돌에 집중하게 되었다.


능선에 올랐을 때는 구름 속이었다. 조망은 없었다. 하지만 구름이 순간순간 흩어질 때마다 드러나는 단편적 풍경들은 맑은 날의 전망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한편의 한국화였다.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이, 고정됨이 아니라 변화가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에서 깨달은 것은 단순하다. 여행의 질은 장소가 아니라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 만약 내가 "비 오니까 망했네"라는 태도로 걸었다면, 그것은 정말 망한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대신 "비 오는 산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호기심과 관조적 태도로 걸었고, 그래서 역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태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이건 별로야" "저건 유명하지 않아" 같은 즉각적 평가 대신, 일단 관찰한다.

둘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빨리 많이 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게 보더라도 깊이 본다.

셋째, 예상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나올 거야"라는 기대 대신, "실제로는 어떨까"라는 열린 자세.

넷째,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파리보다 못하네" 같은 비교는 눈앞의 경험을 평가절하한다.

다섯째, 기록보다 경험을 우선하는 것이다. 사진 찍기에 집중하면 정작 그 순간을 놓친다.


이런 태도는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는 평가하고, 빨리 움직이고, 예상하고, 비교하고, 기록하도록 학습되어 있다. 이 습관을 의도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도 에펠탑은 특별하지 않나?" 물론이다. 하지만 그 특별함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부여한 의미다. 만약 당신이 파리 역사도, 에펠탑의 건축적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철골 구조물로만 본다면, 그것은 서울 남산타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역으로, 만약 당신이 한라산의 지질학적 역사, 생태계의 독특함, 제주 문화와의 연결을 이해하고 오른다면, 한라산은 에펠탑만큼 특별해진다. 차이는 장소가 아니라 당신이 가진 맥락과 태도다.


정말 "국내는 다 가봤다"는 말이 맞을까? 한국에는 수천 개의 산, 수백 개의 섬, 무수한 골목과 마을이 있다. 설령 물리적으로 같은 곳을 간다 해도, 다른 계절, 다른 시간, 다른 날씨에 가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여름 낮의 지리산과 비 오는 날의 지리산은 완전히 다른 장소다.


"해외가 더 자극적이잖아" 맞다. 해외는 자극이 강하다. 하지만 자극과 의미는 다르다.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작년에 프랑스를 갔으면 올해는 남미, 내년에는 아프리카. 끝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야 만족한다.


반면 태도로 여행하는 법을 배우면, 작은 자극에서도 깊은 만족을 얻는다. 지속 가능한 여행이다. 매주 새로운 해외 여행을 갈 수는 없지만, 매주 새로운 태도로 가까운 곳을 갈 수는 있다.


결국 핵심은 여행의 재정의다. 여행은 비행기 타는 것도, 유명한 곳 가는 것도, SNS에 올릴 사진 찍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새롭게 보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거리와 무관하다. 집 앞 공원을 다른 시간에 걸으면서도 여행할 수 있다. 아침 7시의 공원과 저녁 6시의 공원은 다른 곳이다. 빛의 각도, 사람들의 구성, 소리의 풍경. 모든 것이 다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 평소 스마트폰만 보다가, 의도적으로 밖을 본다. 지나가는 건물들, 간판들, 사람들. 같은 길을 수백 번 지나쳤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이제 본다. 그것이 여행이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주의가 아니다. "국내도 좋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가 아니다. 오히려 비판적 각성이다. 우리가 여행이라고 배운 것 "거리, 명성, 이국성, 인증의 허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여행 "발견, 관찰, 경험, 존재"를 되찾는 것이다.


해외 여행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해외도 가되, 그것이 유일한 여행이 아님을 알라는 것이다. 에펠탑도 보되, 집 앞 골목도 보라는 것이다. 멀리 갈 때의 설렘을, 가까운 곳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진짜 여행자다.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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