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번 추석 명절에 다시 보게 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간접적인 줄거리를 다루고 있으나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작품을 모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스포일에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한 가지더,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괴물의 창조주입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호기심이 초래하는 행동의 결과와 책임 문제를 탐색하는 윤리적 철학적 텍스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창조하고 그 창조물을 방치함으로써, 행동의 결과와 책임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준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신체의 부분들을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창조물이 살아나자 두려움과 혐오감에 사로잡혀 도망친다. 그는 창조 행위에는 매료되었으나, 괴물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겪을 고통과 자신에게 부과될 책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괴물은 복수의 길로 나아가고, 빅터는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이는 능력과 행동, 책임이 분리될 때 발생하는 파국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윤리적 분석을 위해 칸트와 공리주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칸트적 관점에서 도덕성은 행위의 동기와 의도에 근거한다. 칸트의 핵심 원리인 정언명법(Categorical Imperative)은 "네 행위가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하라"는 규범이다. 빅터는 생명을 창조했지만, 그 행위가 인간과 사회에 어떤 보편적 의미를 갖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괴물을 수단으로만 취급하고 존재 자체를 존중하지 않은 그의 행위는 정언명법을 위반한다. 이는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훼손하며, 책임 회피가 윤리적 실패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둘째,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도덕성은 행위의 결과에 근거하며, 최대 행복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빅터의 창조 행위는 괴물의 고통,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 그는 결과를 예측하거나 관리하지 않았으며, 이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실패한 행위다. 즉,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의도보다 행동 이후의 관리와 대응에도 포함된다.
현대적 맥락과 사례를 통해 이 논의를 확장할 수 있다.
첫째,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인간 판단과 기술적 능력이 결합해 예측 불가능한 파국을 초래한 실제 사례다. 설계 결함과 운영자의 실수가 중첩되면서 대규모 방사능 유출과 사회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기술적 능력이 있어도 책임과 관리가 결합하지 않으면 재앙이 발생함을 보여준다.
둘째,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유전자 조작으로 공룡을 부활시키는 상상적 시나리오다. 창조된 공룡이 통제 불가능하게 되면서 공원 방문자들이 위험에 처한다. 이는 빅터가 괴물을 방치한 것과 유사하다. 창조물의 안전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능력 실행이 파국을 낳는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셋째,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인간을 위협한다. 창조자와 개발자가 AI의 사회적 영향과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 서사와 구조적 유사성을 가진다
넷째, 다이너마이트 발명(알프레드 노벨)은 기술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광산과 건설 현장에서 혁신적 효율을 제공했지만, 19세기 후반 전쟁과 폭력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노벨은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말년에 평화상 설립으로 책임을 성찰했다. 이는 기술적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 상관성을 강조한다.
이 네 사례는 모두 창조 능력과 책임이 분리될 때 발생하는 위험을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생명 창조 이야기가 아니라, 행동과 책임의 윤리적 사회적 연관성을 경고한다. 인간은 기술적 능력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사용과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행동과 책임은 인간 존재와 기술 활용의 근본적 윤리 기준이다. 이를 망각하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처럼 자신이 만든 파국 속에서 몰락하게 된다. 기술 발전은 불가피하지만, 그 기술을 책임 있게 다루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