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의 문고본

다시 생각하는 나의 감당의 크기

by 우주사슴

이번 명절에 본가에 두었던 일곱 권을 가져왔다. 숫자는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던 문고본의 전부였고, 내 가방에 무리 없이 들어가는 양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우연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물건은 늘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남는다. 일곱이라는 개수는 어쩌면 지금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기억의 크기였을 것이다.


나는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살아보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짐 등 정리해야 할 것들도 많다. 옮길 때마다 ‘이건 다음에도 가져갈까’라고 묻는다. 대부분의 물건은 그 질문 앞에서 멈춘다. 버려야 한다는 결심보다, 가져갈 이유가 없다는 자각이 먼저 온다. 그렇게 해서 남은 물건들은 어떤 의미로든 나의 ‘핵심’으로 구축된다.


그런데 이번엔 역류였다. 더 줄여야 할 시점에, 오히려 늘렸다. 일곱 권의 책을 더 들고 왔으니까. 그건 효율과 거리를 둔 선택이었다.


문고본은 손에 쏙 들어온다. 작은 가방의 한쪽에 넣어도 부담이 없고, 누워서도 보기 좋다. 하지만 그런 실용성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이 크기 덕분에 문고본은 ‘독서’라기보다 ‘조우’에 가깝다. 책을 읽는다기보다 책 한 구절과 부딪힌다는 느낌이다. 금세 덮을 수 있고, 다시 펼칠 수도 있다. 긴 호흡으로 이어 읽는 것이 아니라, 짧은 문단에서 멈추고, 생각이 튀어나가며, 그 여운이 일상으로 흘러드는 방식이다.


일본 문고본은 특히 세로쓰기다. 시선의 흐름이 가로보다 느리고, 문장의 리듬은 더 명확하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손끝의 감각이 따라붙는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이 독서의 리듬을 완성한다. 그래서 문고본은 손으로 읽는 책이다. 언어의 운율을 눈으로만이 아니라, 손의 움직임으로 흡수하는 감각이 있다. 이것은 전자책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번에 가져온 책들은 대부분 문학과 수필이었다. 그중 한 권, 이토 마모루의 『오늘을 즐겁게 하는 100개의 문구』는 오래전에 나에게 문장 하나를 남겼다. “타인의 기준에 살아가는 것을 멈춘다.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라. 그리고 그것으로 책임을 진다.”


그 말이 내 삶을 바꿨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나를 보면 어느새 그 문장은 내 태도 속에 들어와 있었다. 회사에서도, 관계에서도, 점점 ‘내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 습관이 생겼다.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아마 나는 그것을 스스로 검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


책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한때 나를 흔들었던 문장이 다시 손에 닿을 때, 그 흔들림의 방향을 점검하게 된다. 이번에 책을 가져오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건 그 감정이었다. 이것은 회복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깝다. 과거의 감정을 복원하려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책을 들고 와 책장에 꽂을 때, 새로 놓을 공간이 없어, 기존책이 꽃힌 윗공간에 넣었다. 어쩌면 곧 그 책들을 회사 책상 위로 옮길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의 하루는 반복적이지만, 가끔 눈에 띄는 문장 하나가 그 반복을 깨뜨리기도 한다. 언젠가 그 책들을 점심시간에 한두 줄 읽는 것으로 새로운 루틴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어떤 책도 제대로 펼치지 않았다. 이제 막 가져온 참이고, 그저 그 책들이 방 한켠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의 안도감이 있다. 음악을 듣는 일처럼 즉각적인 감정의 반응은 없지만, 책의 존재는 묵직한 안정감을 준다. 일곱 권의 문고본이 주는 든든함은, 내가 여전히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산 순간 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일본어 서적은 여전히 어렵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어려움을 견디는 방식으로, 나는 여전히 책을 곁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소유의 복원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행위도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공간에서, 이만큼의 무게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생각의 크기를 다시 조정하는 일이다. 문고본의 크기처럼, 사유도 손에 들어오는 크기로 줄여야 할 때가 있다.


책은 여전히 책장에 있다. 때로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을 펼치지 않아도, 내 시야의 한켠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간이 달라진다.


당신에게도 그런 물건이 있는가.


읽지 않아도, 쓰지 않아도, 그저 곁에 두는 것으로 스스로를 확인하게 되는 물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당신을 불러내는, 조용한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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