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나이가 들어가며 떠나는 친구들

관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닌 만들어 나가는 것.

by 우주사슴

30대 후반에 들어서면 10대와 20대에 맺었던 친구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지만, 각자의 삶이 달라지면 관계의 결이 달라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거주지, 직업, 경제적 격차, 가치관의 변화가 그것을 가속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듯한 감각이 생긴다. 중요한 건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기존 관계를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든다. 만남을 주선하고, 연락을 이어가며, 과거를 소환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만남이 끝난 뒤 남는 건 피로감일 때가 있다. 대화는 피상적이고, 공감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일부 관계는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함께한 시간과 기억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다만 그 역사성이 지금의 관계를 지탱하기에 충분한가를 묻게 된다.


형식적인 만남을 반복하면서 오히려 외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에너지를 투입했지만 만족은 없고, 그 괴리는 고립감을 키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이 관계를 유지하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회는 관계의 지속을 미덕으로 본다. 그것은 단순한 형식주의가 아니라, 신뢰와 책임, 상호 돌봄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관계를 정리한다고 해서 이 윤리를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쌍방향이다. 끊는 것도, 이어가는 것도 한쪽의 선택만으로는 완결되지 않는다. 관계의 형태를 조정하고, 약한 연결을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다.



모든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에 선택이 필요하다. 흔히 ‘배움과 성장’을 기준으로 새로운 관계를 찾지만, 이는 관계를 수단화할 위험이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논리는 관계를 효율성의 틀에 가두는 것이다.


관계의 본질은 존재의 상호 인정이다. 함께 웃고, 침묵하고,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의미를 갖는다. 성장 중심의 사고는 이 내재적 가치를 지워버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호성이다. 관계는 주고받음의 균형 속에서 유지된다. 그 영향이 반드시 발전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 위로, 즐거움, 공감도 충분히 의미 있다.


비대칭성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관계가 평등할 수는 없다. 가족, 멘토, 오랜 친구와의 관계는 각기 다른 구조를 갖는다. 효율성의 기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봄과 책임이 여기에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 가족, 시간의 제약으로 관계 맺을 기회가 줄어든다. 따라서 의도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취미나 공동체, 온라인 네트워크 등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 관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관계를 정리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은 필연이다.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면 다시 익숙한 관계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외로움이 두렵다고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에 머무는 것은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 단기적 불편보다 장기적 의미를 선택해야 한다.


외로움은 관계의 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실존적 외로움은 남는다. 따라서 관계 재구성의 핵심은 상실과 죄책감을 직면하며 자신을 조율하는 일이다. 관계 전략은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윤리를 명료히 하는 행위여야 한다.



관계는 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상호 응답의 장이다. 효율성만 추구하면 결국 고립된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절을 선택하는 사람은 같은 논리로 타인에게 정리될 수 있다.


따라서 관계를 완전히 끊기보다, 빈도와 깊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변형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윤리적이다. 느슨한 연결도 충분히 의미 있다. 지속 가능한 관계는 강도가 아니라 조율의 결과다.



30대 후반의 관계 재정립은 과거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연결된다. 과거를 단순히 비효율로 치부하면 자기 역사를 지우게 된다. 과거의 관계는 지금의 나를 구성한 기반이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미래 지향적 관계를 택한다는 것은 과거를 잊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다. 사회적 관계의 재편은 개인의 가치관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며, 결국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가’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관계 재구성은 효율적 네트워크 설계가 아니라 삶의 윤리와 의미를 세우는 일이다. 상호성, 존중,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인식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한다.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미래로 향하는 일, 그것이 30대 후반의 관계가 성숙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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