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진정한 선물은 평소에 대하는 자세다.

by 우주사슴

선물을 받는 순간, 기쁨보다 먼저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부담이다. 고마움과 동시에 '나도 무언가 돌려줘야 한다'는 압력이 밀려온다. 특히 쿠폰이나 기프트카드 같은 현금성 선물은 그 압력을 더욱 노골적으로 만든다. 금액이 명확히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3만 원짜리 상품권을 받으면, 이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의무가 생긴다.


필요 없는 물건을 받는 곤란함도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옷,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 쓸 일 없는 장식품. 이런 것들은 받는 순간부터 처리해야 할 숙제가 된다. 버리자니 미안하고, 간직하자니 공간만 차지한다. 또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물건이 이미 필요에 의해 갖추어져 있다. 이런 경우 새로 들어오는 선물은 대개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것이 되기 쉽다. 그렇게 선물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선물은 세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첫째, 교환이다. 선물이 거래처럼 기능할 때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만큼 줘야 한다"는 암묵적 계약. 이때 선물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거래의 수단이 된다. 받는 순간 빚이 생기고, 비슷한 가치의 무언가로 갚아야 균형이 맞는다. 이는 선물이라기보다 지연된 물물교환에 가깝다.


둘째, 잔여다. 효용이 없는 선물이 집 안에 쌓일 때다. 서랍 깊숙이 처박힌 미사용 쿠폰, 옷장 한구석의 입지 않는 옷, 선반 위의 장식품. 이것들은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지만, 삶 속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잔여물로 남는다.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 채, 죄책감과 함께 공간만 차지한다.


셋째, 상징이다. 물질 자체보다 '당신을 생각했다'는 제스처만 남을 때다. 이것이 선물의 가장 순수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제스처만 중요하다면 굳이 물건이 필요할까? 그 생각과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관계와 선물 사이에는 흥미로운 역학이 있다. 관계가 허술할수록 선물이 보험이나 보상처럼 쓰인다. 평소 연락도 없다가 명절이나 생일에만 비싼 선물로 관계를 메우려는 시도. 일상의 무관심을 물건으로 때우려는 것이다.


반면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는 작은 행동 하나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바쁜 와중에 보낸 짧은 메시지,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것—이런 것들이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다. 이들 사이에서는 굳이 특별한 날을 정해 선물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 관계 자체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선물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물건의 가격이나 희소성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같은 만 원짜리 선물도, 관계에 따라 감동이 될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선물은 관계를 반영할 뿐, 관계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선물을 받지 않고 주지 않는다. 단, 가벼운 먹을거리 정도는 예외로 남긴다.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간식이나 과일은 그 자리에서 소비되고 사라진다. 잔여가 되지 않고, 상호성의 압력도 덜하며, 공유의 즐거움이 있다.


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데에 신중하다. 정말 필요한가, 오래 쓸 수 있는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하는가. 이런 질문을 통과한 것만 들인다. 불필요한 물건이 계속 오가고 쌓이는 문화는 결국 낭비를 강화한다. 선물은 호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늘리는 구조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결국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 선택은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낭비를 줄이고 관계를 맑게 유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선물이라는 우회적 방식을 택하는가?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직접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면 되는데, 왜 굳이 물건을 끼워 넣는가?


인간은 마음을 직접 드러내는 데 서툰 존재다. "고맙다" "사랑한다" "네가 소중하다"라는 말을 곧장 건네는 대신, 물건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다. 선물은 그 어색함을 덜어주는 장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 속에서 마음마저 상품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표현이 결국 ‘가격표가 붙은 물건’으로 환원되는 순간, 관계는 자연스러움 대신 시장 논리를 닮아간다.


따라서 선물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관계의 빈틈을 감추려는 가면일 수 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시간, 관심, 진심인데, 그것을 건네기 어려우니 대신 물건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선물은 관계의 부재를 은폐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진짜 선물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태도와 실천이다. 힘들 때 먼저 연락하는 것,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는 것, 필요할 때 시간을 내어주는 것,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진짜 선물이다.


선물은 관계의 척도를 드러낼 수는 있어도,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값비싼 선물로는 메울 수 없는 것이 있다. 일상 속 작은 배려, 지속적인 관심, 진심 어린 대화. 이런 것들이 쌓여야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선물 대신 관계에 집중한다. 특별한 날을 정해 비싼 물건을 주기보다, 평범한 날에 진심을 건네는 것. 포장된 상자 대신 함께 보내는 시간. 가격표가 붙은 물건 대신, 값을 매길 수 없는 신뢰.


결국 가장 좋은 선물은 선물이 필요 없는 관계다. 주고받음의 균형을 재지 않아도, 빚진 느낌 없이 편안한 관계. 물건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관계. 그것이 내가 바라는 관계이고, 그래서 나는 선물을 받지 않고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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