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청을 보낸 날

여덟 번째 편지

by 아기도토리


“감기에 걸렸어.”


전화 너머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어. 말 그대로 감기에 걸렸는지 목소리는 조금 쉬었고 가래가 잔뜩 낀 것처럼 탁했어.


“침대에 누워서 전화 받는 거야?”


포근한 이불을 꼭 덮고 이마에는 찬물에 젖은 수건을 얹은 친구를, 나는 상상해 보았어. 키만 훌쩍 컸지, 몸은 온통 빼빼 마른 아이. 온갖 약을 달고 사는 아이.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밖에 몰랐는데 성인이 되자마자 술집을 전전하더니 몸이 더 허약해진 남자아이.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더니 조금만 추워지면 곧잘 감기에 걸리는구나.

친구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어.


“응. 아주 힘들어. 설핏 잠이 들었다 깼어. 목소리 이상하지?”

“조금. 가래가 섞여서 들쭉날쭉해.”

“꼴이 말이 아니네.”


나는 통화 속 상대가 말을 이어가기를 바랐지만, 친구는 더 말이 없었어.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거실 책장 앞에 멍하니 서서 전화번호부를 사락사락 넘기고 있었지. 그러다 문득 꿀을 넣은 달콤한 레몬차 한 잔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어.

“레몬청을 보내줄까?”


나는 불쑥 말했어. 전화 너머로 깜짝 놀란 듯한 친구 목소리가 들렸어.


“보내준다고? 직접?”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어.


“응. 마트에서 레몬 한 상자를 사서 레몬청을 만들려고. 직접 만든 청을 넣은 따뜻한 차를 마시면 금세 나을 거야. 레몬은 몸에 좋으니까.”

“넌 정말 다정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아닌데.”


전화 속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어. 내 말 덕분에 친구는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렸을까. 아마 친구는 방금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도 다정하게 웃고 있을 거야.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무튼 고마워. 또 연락할게.”

“응.”


나는 전화를 끊고 탁자 앞에 놓인 메모지에 살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

레몬 한 상자와 꿀, 그리고 생각 몇 조각.






깨끗이 씻은 레몬을 얇게 저민 뒤, 레몬과 꿀을 한 겹씩 쌓아나가면 간단하게 레몬청을 만들 수 있어.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을 굉장한 일이야.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거든.

나는 레몬청이 든 유리 용기를 상자에 담았어. 비록 주방에는 시큼한 레몬 냄새가 그득하고 조리대가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어.


“상자를 고르고, 주소를 적어 주세요.”


우체국에서 상자를 골라 레몬청을 담고, 주소를 적었어. 친구가 알려준 주소를 맞게 적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지.

“다 되었습니다. 무사히 도착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섰어.






며칠 뒤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 레몬청을 받은 지는 꽤 되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바로 전화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말했어.


“네가 만들어준 레몬청, 팔팔 끓인 물에 타서 매일 마시니까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매일 마셔?”

“응. 저녁마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게 내 취향이야. 정말 맛있어.”

“다행이다.”


전보다는 목소리가 훨씬 좋아졌네. 친구는 예전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을까.

나는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오늘 밤을 평화롭게 보낼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