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이렇게 보는 건 거의 처음이네요. 막 이사했을 때 떡을 돌렸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쓰레기봉투를 두 손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옆집 사람이 말을 걸었어. 낯선 얼굴. 몇 번 본 적 없는데도 친근하게 말을 걸어서 나는 조금 놀랐어. 몇 달 전에 어머니가 옆집 사람에게서 받은 거라며 시루떡을 가져온 일이 떠올랐어. 떡이 부드럽고 쫀득해서 정말 맛있었는데.
“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듯했어. ‘1’이라고 표시돼 있던 숫자가 2, 3, 4, 5…… 점점 높아지고 있었거든.
내가 대답하자 옆집 사람은 바로 말을 꺼냈어.
“이 동네는 살기 좋은 것 같아요.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주말마다 쓰레기 차를 기다려야 했거든요. 게다가 늘 소음에 시달려야 했어요. 빽빽한 주택가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은 정말이지 귀가 아플 정도였다니까요.”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런데 여기는 정말 조용하네요. 간혹 버스가 다닐 때 바닷바람 같은 소리는 나지만, 아주 고즈넉하고 한적해서 좋아요. 사람들도 친절한 거 같고, 밤길도 그다지 무섭지 않고. 아파트에 주차장이 딸려 있는 것도 참 좋아요. 주택 살 땐 새벽마다 일어나서 차 빼주러 가는 것도 일이었거든요. 새벽에 전화가 와서, 졸면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면, 되게 끔찍하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 옆집 사람은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행복한 상상을 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환해졌지.
“버스 정류장도 근처에 있고 차 타고 십 분만 가면 지하철역도 있으니까 여기선 출퇴근하는 것도 부담 없어요. 역세권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그때 마침 15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나와 옆집 사람은 한 명씩 엘리베이터에 올랐어. 나는 닫힘 버튼을 눌렀고 옆집 사람은 ‘1’을 눌렀지.
우리는 말없이 거울을 바라보았어. 옆집 사람은 두툼한 가죽 가방을 손에 든 세련된 모습이었지만, 내 모습은 그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후줄근한 차림새였어.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재잘재잘 말을 하던 옆집 사람은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렸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고 우리는 함께 내렸어.
건물 로비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어. 따사롭고 여린, 봄의 햇살. 그 잔잔하고 고운 빛의 줄기.
“아버지가 안 계시나 봐요.”
그때 옆집 사람이 불쑥 물었어.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는 듯했어. 옆집 사람의 얼굴은 어린아이만큼이나 순진해 보였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
어떻게 안 거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옆집 사람은 친근하게 웃어 보였어.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며칠 전에 소소하게 집을 꾸몄는데 무척 예쁘거든요. 사실 자랑하고 싶어서도 있어요. 우리, 이웃이잖아요. 김장할 때도 나눠 먹고 서로서로 놀러 가면서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나는 멀뚱히 서 있었어. 로비 밖에서 바람에 흩날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어.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옆집 사람은 그렇게 인사하고는 사라져 버렸어. 나는 양손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반대쪽 출입문으로 향했어.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고, 아름다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