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편지
휴일이었어. 그날은 언니도 나도 어머니도 아침부터 줄곧 집에 있었지. 이른 점심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었어. 설거지를 하고, 건조대에 이불을 널고, 파르메산 치즈를 넣은 과자를 만들었어. 그러고는 온종일 식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어.
날이 부쩍 따뜻해져서 커튼을 걷고 창을 열었어. 어느새 아파트 주변 나무들엔 푸릇푸릇한 이파리가 한껏 피어 있었지. 바람이 옅은 파도처럼 불었고 새하얀 커튼을 너울너울 흔들고는 했지.
밖에서, 요란스럽게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다람쥐처럼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내 앞에 마주 앉아 멍하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 곁으로 다가갔어. 까르르 웃는 아이들과는 달리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느 것도 담기지 않았어.
어머니는 덤덤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어. 햇볕 때문에 발치에 그늘이 졌지만 눈만은 밝게 빛나는 것 같았어.
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니는 단지 아이들이 귀여워서 그들을 바라보는 걸까. 나와 언니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언니. 이렇게 네 명이 도란도란 살았던 행복했을 시절을 회상하는 걸까.
우리는 늘 함께 공원에 가곤 했어. 공원에는 연인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행복한 얼굴로 걷고 있었지. 우리 가족도 그랬어. 어린 나와 언니는 아빠 손을 잡고 엄마 손을 잡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곤 했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거기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말을 트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환하게 웃기도 했어.
오렌지색으로 물든 하늘에 비친 어머니의 옆얼굴.
싱글싱글 웃으며 우리를 보던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는 그날을 기억하는 걸까.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추억이 담긴 걸까.
있잖아, 앤.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몰라.
어머니는 젊었던 날을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언니들과 동생들과 산으로 들로 바다로 온종일 아무 고민 없이 뛰놀던 날을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꿈속에서나 가능할 젊은 시절로의 회귀를 바라는 걸지도 몰라.
나는 계속 그림을 그렸어.
그리고 어머니는 한동안 연한 햇살에 노랗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