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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지 May 31. 2024

35세 싱글맘, 부모님에게 임신사실 알리기

임신 15주 임산부의 배가 커질수록 꿈도 커진다

5주차 임신 사실을 알게된 첫 날부터,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라 너무 놀라 변기통을 부여잡고 바로 토를 해버렸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 손을 달달 떨면서 친언니와 가장 친한 여자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 후로 한국에 들어가서 친언니도 만나고 친한 친구들도 만나면서 상황에 대한 현재 감정이나 대책회의 등을 이야기했고, 독일로 다시 돌아와서도 언니나 친구들이 자주 안부를 묻고 궁금해해주어서 평소보다 더 연락빈도가 높아지며 거의 데일리 업데이트를 주고받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쿨하고 멋진 우리 언니는 전화로 내가 임신사신을 알리자마자 (내가 남자친구가 오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축하한다는 말로 내 귀청을 때려주셨다. 아이가 3이 있는 기혼자로서 임신 출산 육아의 힘듦 하지만 보람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든 너의 결정이라며 응원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이게 너(나)의 삶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임신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코멘트를 했고, 신기하게도 나도 그런 느낌을 똑같이 받았기 때문에 언니와 나의 이 자매 텔레파시가 내가 아기를 지키고 낳아 키우기로 결정하는데에 작지 않은 원동력이 되었다. (나중에 한국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가 왠지 아기는 남자애일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14주차 유전자 성별검사에서 빼박 아들이 나와버렸다. 우리언니 촉 너무 신기해...) 


가장 친한 대학시절 여자친구는 한국에서 만나자마자 얼싸안고 선물봉다리를 내밀었는데, 아기 우주복과 쪽쪽이가 들어있었다. 우주복의 색깔이 청녹색이어서 왠지 남자아기에게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아기 성별이 남자로 밝혀지면서 둘다 이마를 탁 쳤던...! 이 친구도 우연히 한국 미국 이중국적자여서, 한국국적인 나와 미국국적 애기아빠 사이에서 미국에서 태어날 이중국적 예정자인 아기의 국적문제 등에 대해서도 깨알 수다를 떨었다. 아기독수리는 이모독수리를 사랑해요...!


가장 친한 고등학교 여자친구와도 훠궈를 먹으며 이 상황에 대한 대책회의를 이어갔다. 그 친구의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간 거였는데, 술파티로 계획된 그녀의 스몰웨딩에서 내가 다짐했던 대활약을 펼치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아쉬웠지만, 친구는 결혼 나는 임신 각자의 호재를 서로 축하해주었다. 


다른 친한 친구들고 언니들에게도 사정을 알렸는데, 특히 한국에서 만나는 지인들은 내가 평소에 아침에 만나든 저녁에 만나든 날회산물에 술을 곁들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번 만남에 내가 익은 음식과 음료수만 먹으니까 친한 언니 한 명이 무슨 일이냐고 너무 놀라시길래, 아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다고 대답하니 언니가 너무 걱정하는 눈빛으로 "너 혹시 암이니...?"라고 세상 진지하게 물어보시는 바람에 민망하게 진실을 고백... 역시 사람의 행동이 평소와 너무 달라지면 티가 나기 마련인가봅니다.


이렇게 주변에 믿을만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부모님께 말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늦둥이이기도 하지만 나이도 역시 35인지라, 부모님도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시고, 최근 이삼년 전부터 결혼 안하냐 만나는 남자 없냐 공격이 들어왔었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결혼도 안 할 거고 아기도 안 낳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왔었기 때문에, 남자친구나 결혼을 건너뛰고 갑자기 아기만 뿅 생겨버렸다고 하면 K-부모님 정서상 뒤로 뒤집어지며 기절하시며 걱정으로 가득차실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었다. 12주차 NIPT 검사에서 저위험군 판정을 받아 1차 관문 다운증후군 걱정은 떨치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말해야될 때가 되었다. 13주차 주말, 엄마아빠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잘 있어? 나 할 얘기가 있어, 나 아기가졌어."

"으잉...?"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핸드폰을 쳐다보던 엄마아빠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갑자기


"아이고야 축하한다~~!"


응...? 어떤 반응일지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질러버린 나였는데, 오히려 쿨하고 신나는 엄마아빠 반응에 내가 더 놀라버렸다.


"응 어쩌다 생겼는데 낳아서 키우기로 했어~"


"아기 아빠가 있든 말든 결혼을 하든 말든 우선 너랑 애기 건강한게 우선이다 알지?" (아빠)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아기를 가진 거니?" (엄마, 깎던 오이를 계속 깎으며)


엄마아빠 옆에 앉아있던 우리집 고양이만 더 이상 자기가 막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굳어버렸다. 그 후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화를 종료하고는, 애기아빠나 향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카톡으로 나누었다. 엄마아빠도 분명 많이 놀랐겠고 당연히 걱정이 많이 되겠지만, 잔소리 티를 내지 않고 나의 결정을 믿어주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아빠는 아기의 성별을 궁금해했고, 본인은 딸 둘 (나와 언니), 먼저 결혼한 언니에게 딸 셋(나에게는 조카들)이 있고 심지어 부모님댁 고양이도 (중성화한) 암컷이었기 때문에 우리집은 다 딸이겠거니 싶어하는 분위기였는데 그 다음 주에 성별결과가 나와 아들임을 알리자 아빠가 드디어 집에 아들도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나도 여러 이유로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고, 언니도 왠지 내 아기가 아들일 것 같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 가족은 손녀 손자들이 모두 있는 대가족이 될 예정이다. 물론 미국에서 둘이 살게될 나와 아기는 조금 조촐한 가족이긴 하겠지만, 이 둘을 사랑해주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행복이다.


14주차 반부터 아랫배가 앞으로 볼록 나오기 시작했다. 15주가 된 지금, 이제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배뽈록이 나오고, 아침에는 단단하고 동그랗게 배가 뭉치기도 한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배를 느끼며, 배가 커질수록 나와 아기의 꿈도 함께 커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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