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인이 되면 노동의 권리를 갖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다. 즉, 우리는 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또한 존재한다. 현대 사회의 노동은 대개 교환노동인데, 교환노동은 대개 재미없고 자유를 제약당하고 시간을 빼앗기고 기분나쁜 종류가 많기 때문에 이들은 강제노동으로 일컫는다. 일이 강제성을 띄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보람'이나 '뿌듯함'과 같은 근본적인 가치를 향유하기 힘들다. 노동의 강제성에 더해 인간 관계, 초과 근무,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하루하루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극도로 하기 싫은 일은 4시간만 일해도 그 하루를 지옥같은 하루로 기억하기 마련이다.
부산교육대학교의 심승현 교수는 <사람과 노동의 인문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놀이, 호혜, 증여, 참여 등 교환노동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들도 노동으로 재해석되어야 우리의 삶이 '자유로운 노동의 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환노동에 대해 '인간의 상품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이 강제노동에서 놀이노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리콘밸리의 IT기업에서 점점 경제적 성과를 얻고 지지받고 있다. 근무시간에 낮잠을 잔다든지, 산책 시간을 준다든지 하는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말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일에 대한 유연성이 그리 높지 못하다. 기성세대가 주도했던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며 경직된 조직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게 현실이다.
일부 인문학자들은 사람이 사람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할가치, 교환가치 외에 '그저 있음의 가치(존재 자체의 가치)'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노동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중증 발달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사람에 해당한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과 나온 답은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가치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인문학자나 정책연구자들 중 일부는 기본소득제를 전면시행하여 교환노동을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어야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제도로 인해 노동하지 못해 존재가치마저 잃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다. 심승현 교수는 ‘사람 삶 그 자체’로 노동을 재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호혜, 참여, 증여의 시민사회를 발달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에 기반을 둔 신뢰와 호혜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주적 시민사회의 의식 있는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1970년대 전후로 시작된 고성장 시대에는 가족을 위해 생계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고 직원의 능률이 좋든 안 좋든 실적을 잘 쌓을 수 있었으며 고성장 시대에 힘입어 많은 대기업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인구 고령화와 성장의 한계로 인해 저성장 시대로 들어섰고 직원이 열심히 일해도 회사의 이윤이 증가한다는 보장이 없어졌다. 게다가 세상이 빠르게 변해 4차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AI와 자동화 로봇이 인간의 신체와 두뇌를 대체하게 되고 많은 일자리는 사라져만 간다. 결국 살아남는 직업은 높은 지능과 기술을 겸비한 ‘사’가 들어간 직업군 또는 고급 인력, 그리고 신체 능력을 활용한 직업들인 모델, 연예인, 배우, 운동 선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의 경우 입문에 대한 경쟁력이 매우 높아 소수에 불과하며 기업체 내 고급 인력의 경우 대부분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신체 능력을 활용한 직업들은 대부분 프리랜서와 같은 직업이라 안정적이지 못하다. 인간이 절박하게 원하고 온 힘을 쏟아부어야만 될 수 있는 직업만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상 신체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 등 언제 어디서 스트레스가 올 지 모르고 어떤 사람을 만날 지 모르고 어떤 극단적 상황이 올 지 모른다. 어느새 퇴사는 비일비재해졌고 ‘대퇴사 시대’라는 말이 등장했으며 평생 직업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스스로 '잉여 인간'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현재의 노동 개념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 나이 많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장애를 느끼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에게 잉여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심승현 교수는 사람은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하며, 진정한 노동은 사람의 다양한 삶 그 자체라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강제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노동의 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교환노동이 주색인 현재의 노동 개념을 놀이, 증여, 참여, 교환을 모두 포괄하는 ‘사람 삶 그 자체’의 노동으로 재해석,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화 시대에는 기업과 구직자 모두 다량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과 과도함, 기술의 수준이 채용 시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보의 과도함은 구직자로 하여금 직업 쏠림 현상과 잦은 이직을 야기시킨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경우 미국과 비교해 이직 문화 또한 매우 경직되어 있다.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직업이나 어떤 직장이 얼마를 버는지 공공연히 드러나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고연봉의 특정 직업으로 입사지원이 쏠리거나 편한 직장, 고수익의 직장으로 직장을 자주 옮기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변수가 작용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어떤 회사에 가는지보다 어떤 직업을 가질 지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규모가 어떻든, 회사는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좋은 회사는 좋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만큼 좋은 복지가 있는 것일 뿐이고 그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채용해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야 한다.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않으면 일을 맹목적으로 할 뿐이고 돈의 노예, 일의 노예가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일이 나에게 가치 있고 어떤 일을 할 때 보람 있는지 생각해보자. 돈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나 직장일수록 막중한 임무와 책임이 뒤따르며 여가는 고려하기 힘들다. 돈은 그저 우리가 생활하거나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일을 할 때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고 일이 아닌 하나의 좋은 '삶'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감정 조절하기'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