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말 이외에, 설명이나 정보 전달 등 일반적인 말에 있어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설득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해결을 목적으로 말을 해야 하며 지적을 하거나 책임을 물을 때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문제 중심적 사고를 해야 뒤탈이 없다. 근거 없는 주장은 억지주장일뿐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논리가 통하지 않는 때가 많이 찾아온다. 처세술이 논리보다 더 용이하게 쓰일 때가 있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통해 문제를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가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논리보다 감정에 호소할 때도 있고 때론 하얀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논리적 사고를 함양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 아무리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가끔씩 말을 할 때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 말실수를 범한다. 말의 본질이 흐려지기도 하고 말이 다른 길로 새기도 한다. 신념이 너무 확고해 독선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감정에 치우쳐 이성적으로 말하지 못하기도 하며, 반대로 이성에 너무 치우쳐 상대방의 심리나 감정을 헤아리거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확증 편향하여 말하기도 하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며 심지어는 대화가 감정 싸움으로 치환되어 사소한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온라인 세계에서는 상대방과 마주하지 않고 말하며 불특정 다수가 개입하기 때문에 필터 없이 막말이 오가곤 한다. 우리는 말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이해 관계 속에서 수많은 상황을 맞이한다.
한 번 뱉어놓은 말을 주어담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 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사람의 눈치를 보는지는 말에서 모두 파악된다. 우리가 말을 하면서 실수인지 모르고 넘어가거나 실수를 무마하고 넘어가는 경우, 또는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 언젠가 문제가 또다시 발생했을 때 시한폭탄은 터지게 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실수를 스스로 바로잡지 않으면 문제를 본질적으로 들여다 볼 수 없고 다음에 비슷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논리력이 부족한 현상은 잘못된 유교적 전통, 온라인 매체의 과다 이용으로 인한 문해력 하락, 충동적이고 과격한 언어 습관 등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다. 논리적 오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이 100%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일 수는 없지만 논리적 오류는 듣는 사람에게 오해를 하게끔 만들고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직장에서도 ‘자기가 사람을 더 많이 겪어봤다’라거나 ‘내가 너보다 오래 일했다’라는 식의 합리화를 하며 논리적 오류를 보이거나 자기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의 방식이나 체계, 오래된 관습에서 비롯된 문제일지라도 문제의 원인을 사람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말에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읽는 것, 듣는 것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말하는 것은 생각없이 할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일을 처리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매번 다른 방식이나 다른 언어로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인 태도와 형식은 일관되게 유지하되, 말의 주제와 방향성은 달라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말의 습관을 길러야 하는 것이고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은 주입식 교육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알고 있다. 반박이나 반론을 제기할 때면 말대꾸, 말대답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꽤 있다. 반면, 유대인의 전통 교육법에는 질문 만들기, 생각하고 답하기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유대인들은 토론의 일상화가 중요하며 그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20대와 일하는 한 CEO의 말을 들어보면, 젊은 사람들은 납득이 되는 일을 진행하길 바란다고 한다. 납득이 가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되며 맥락(전후 사정)과 이유가 명확하고, 어느 정도 동기 부여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성 세대의 사고방식은 처세술이 통하고 상명하복의 방식이 전제된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세대 간의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100% 논리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하고 타인의 말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말의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올바르게 길들여져야 한다. 말의 습관을 올바르게 길들이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말은 글이나 SNS처럼 정해진 단어의 수가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은어나 SNS 유행어에 익숙해져 어휘력이 매우 떨어지고 심지어는 난독증이 발생하는 경우 또한 다수 존재한다. 또한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말을 시키지 않는다. 통제나 명령의 언어로 아이들과 대화하면 아이들은 말을 할 때 주눅들게 되고 말을 하기 싫어하게 된다.
어휘력이 떨어지고 말의 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제한되고 논리적으로 말을 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된다. 말실수가 잦아지고, 말을 뱉을 때 딜레이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는 가끔씩 말을 우물쭈물하거나 한참 뒤에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휘력과 논리력 하락은 결국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안 그래도 현대 사회에서 글이나 SNS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휘력과 논리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성장하게 되면, 더더욱 말을 할 줄 모르게 된다. 해명, 반박, 설명, 부탁 등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아무 말 없이 일을 처리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제대로 된 감정 표출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는 퇴사할 때마저 제대로된 사유 설명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 중에 말을 하는 게 두렵고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SNS를 통해서든, 구두로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지구가 멸망한다 한들, 지구에 2명 이상 살아남아 있으면 무조건 대화를 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대화는 우리 일상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사회가 암기 과목 대신 논리력과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간과 과목에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통제나 명령의 언어보다는 논리와 설명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주제를 던져준 후 그 주제에 대해 많은 사고를 하게끔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말에 대한 사고 방식을 올바르게 바꿔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