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리버풀로 떠날 준비
해외 근무 가신다면서요? 가구와 전자제품을 싣고 가며 보관업체 사람이 물었다. 예? 예, 이 년 간 발령이 나서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께는 얼떨결에 해외지사로 파견근무 같은 어학연수를 간다고 말해버렸다. 이 년짜리 프로그램인데요, 제가 우수 팀장이라 일종의 선발이랄까, 포상 같은 거예요. 외국의 선진 시스템을 견학하고 글로벌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대응력도 키우고 그에 맞게 영어 능력도 신장시키고 뭐 그런 거래요. 지방 발령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분명히 어디냐, 숙소는 구했냐, 명절에는 오느냐, 내가 한번 내려가 봐야겠다, 그런 반응이 이어질 게 뻔했고 그러다간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리버풀에서 온전히 리버풀의 삶을 살고 싶었다.
십 년 전만 했어도 부모님을 속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당신들보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더 잘 알고 잘 대처하리라 여기게 되셨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이건 무슨 말이냐, 이거 혹시 속이는 거 아니냐, 요즘엔 다 그런 거냐. 해외 파견이라는 말에도 역시나, 외국에서 괜찮겠냐 고생이 많을 텐데, 그렇게만 받아들이셨을 뿐이다. 하긴 이십 년이나 젊어진 딸을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그냥 내 딸은 항상 나이보다 젊고 예쁘고 한결같다고 여기시는 분들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어느새 많이들 늙으셨다. 나는 내가 나이 먹는 것만 생각하고 부모님이 연로해지는 건 잊고 있었다. 어쩌면 좋아 어느새 서른이야, 어느새 서른 다섯이야, 세상에 벌써 마흔이야, 좋은 시절 다 지났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서른일 때 부모님은 예순이셨고 서른 다섯일 때 예순 다섯이셨고 이제 칠순이 훌쩍 넘으셨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리버풀에 간다는 소문이 났다. 한번 보자는 얘기에 ‘나 리버풀에 가려구. 준비할 게 좀 많네.’라고 답했더니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땐 정말 어학연수를 알아보고 있을 때였으니 일부러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수습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직장 그만둔 것도 다들 아는데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모두들 부럽다, 홀가분하니 좋겠다, 정도의 반응이었다. 떠나기 전에 밥이나 한 번 먹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어차피 서로 바쁜 사이라서, 이 년이야 금방 가지 뭐, 한국에 있어도 일 년에 한 번 보기 힘든 걸, 리버풀에 가게 되면 들를게, 농담처럼 인사를 대신했다. 굳이 가기 전에 봐야 한다며 섭섭해 하는 친구도 없었다. 통화를 한두 번 더하는 정도가 표현할 수 있는 우정의 최대치였다. 다시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면 다들 신기해하며 웃어주겠지.
출국일까지 일주일은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 회사 안 가도 되니? 준비할 거 많다고 휴가 줬어요. 준비할 거 해야지, 그럼. 근데 초고속으로 이미 다 했어요. 그냥 놀다 가면 되요. 거기 가면 목욕탕이 없을 거라는 이유로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때를 밀었다. 김치가 그리울 거라며 매일같이 한 끼는 김치요리를 먹었다.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전, 김치 볶음밥, 김치만두, 김치비빔국수. 필요한 건 더 없었지만 괜한 핑계로 엄마 팔짱을 끼고 백화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아무리 봄이라도 영국은 날씨가 으슬으슬 춥다는데, 습도 높고 추위까지 타면 골병든다며 아버지는 전기담요를 사오셨다. 나이 들면 몸 챙겨야 돼. 여자는 갑자기 확 늙는 시기가 있어. 엄마도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 딸은 아가씨처럼 예쁘지만 괜히 외국에서 밥도 거르고 몸도 아프면 여태까지 잘 관리한 거 말짱 도루묵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네 몸은 네가 챙기고 밥도 좀 잘 먹고. 비타민과 칼슘제를 가방에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참. 딸은 관리를 잘 해서 젊어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젊어진 거라구요. 왜 얼마 전까지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던 건 기억 못하실까. 너도 눈 밑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기 시작했다고 짝도 없이 어쩔 거냐며 성화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다 잊어버리시다니.
출국 전날 된장찌개에 김치전 저녁을 먹으며 끝내 부모님은 말이 없어지셨다. 아이고 엄마, 아부지, 내가 뭐 어디 멀리 가요? 그럼 멀리 가지. 영국이 가깝냐? 엄마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것도 같았다. 엄마는 참……. 요즘 영국 가까워요. 그냥 비행기 타고 오시면 금방이에요. 두 분 놀러오세요. 나도 거기 맞춰서 휴가 내서 영국 구경이나 하게. 아버지도 옆에서 거드셨다. 그래, 요즘이야 가깝지 뭐. 여름에 우리 같이 가자고. 하지만 두 분이 그곳까지 오실 일은 없으리란 걸 나도 부모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모시고 가지 않는 한, 해외여행 경험이라고는 가이드가 동행해서 입국신고서까지 써주는 패키지여행 한 번이 전부였던 부모님이 열 몇 시간씩 이코노미 석에 앉아 무릎 한 번 못 펴가면서 리버풀까지 오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눈이 안 보여서 여행도 못 하겠어. 뭐 쓰라는 건 많은데 도대체 뭐가 보여야 말이지. 농담처럼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마음이 아렸다. 김치전 맛있네. 이제 김장김치도 다 먹었죠? 내가 와서 일주일 만에 김칫독 다 해치우고 가는 거네? 가볍게 떠들면서 김치전을 꾸역꾸역 삼켰지만 그대로 가슴팍에 얹히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