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현직 교사 이야기
경주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동궁과 월지,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와 석빙고, 무령왕릉에 분황사 모전석탑까지. 한국 제일의 역맛살로 불리는 유홍준 작가님은 경주의 남산을 최고로 치지만, 우리 학생들은 경주월드를 최고로 쳐준다. 그래서 경주로 떠나는 2박 3일 현장체험학습은 즐겁고 설레기까지 한다나. (경주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6학년 테마식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 용어는 사라진지 오래)을 무려 2박 3일로 떠났다. 수도권(에버랜드가 핵심)으로 가거나 신라의 수도권(경주월드가 핵심)으로 가거나. 경주월드가 에버랜드를 이긴 그 해, 나는 답사를 위해 황금같은 토요일, 승용차를 몰고 4시간을 달려 벚꽃이 꽉찬 경주에 도착했다. 숙소를 둘러보고 현장체험학습 코스를 살피며 주차할 곳, 화장실, 집결지 등을 확인했다. 어느정도 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가장 중요한 확인 사항을 다시 되새겼다. 숙소에서 교사들 방과 교감선생님 방을 아예 다른 건물로(왜냐하면 이 숙소는 상당히 낡았는데, 새로 지은 옆건물이 있었다. 중대장을 보필하는 분대장의 마음으로, 교감선생님은 마땅히 새로운 건물에 머무르심이 맞다고 판단하였기에) 해달라는 요청을 숙소 직원들이 정확히 숙지하였는지 확인하는 것. 다행히 나의 충성심(?)은 숙소 직원들에게 잘 전달되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2박 3일의 현장체험학습에서 가장 힘든 점은 학생들을 재우는 일이다. 취침시간이 되면 여기가 지금 경주의 호텔인지 신생아로 가득한 산후조리원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보통 한 방에 4~6명의 학생(혹은 신생아)가 들어가는데, 과반수가 수면에 동의하여도 한 명의 아기가 으앵!하고 울어버리면 연쇄작용이 발생하여 모두가 취침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켜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어서 아이들이 잠에 든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10시는 11시가 되고, 11시는 12시가 된다. 어느새 문열기과 엿보기를 터득하였는지 소리가 안나게 아주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리고 살짝 열린 틈새로 감시자(?)가 있나 없나 확인하는 아이들. 안전하다 판단하면 언제든 옆 방으로 침투할 자세가 되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베개싸움을 허락하노라." 이 한 마디로 나는 신이 될 수 있었다. 베개싸움 혹은 옆방 출입만 할 수 있다면 영혼마저 팔아치울 기세의 학생들은 새벽 2시가 되도록 기회를 노리며 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아무리 라떼 학교라도 허락할 수 없는 게 있는 법. 아, 다음부터는 숙소측에 최면가스를 부탁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