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반은 '러닝코스'다.
대회 준비 7주 차.
매일 3~5km를 뛰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너무 심하거나 발가락이 말썽일 때 남편은, '좀 쉬어 보는 게 어때?'라고 했지만 나는 '응, 오늘 쉴 거야. 가볍게 3km만 뛰고.'라고 했다.
4주 차의 마지막 날. 목표 거리의 700미터 모자란 9.3km를 뛰었다. 6분 41초 페이스로 나쁘지 않아서 10km를 채우고 싶었는데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약속한 식당 앞에 도착하는 바람에 기록을 멈추었다.
이후 대회 한 달 전 플랜을 짰다.
매일 3~5km를 뛰고 일주일에 한 번은 10km를 뛰기로.
관건은 코스였다. 초보인 우리에게는 장애물이 없고 오르막, 내리막이 없고 무릎에 무리가 덜한 모래가 깔린 학교 운동장이 뛰기 제일 좋았지만 집 근처 학교는 모두 운동장을 폐쇄하는 게 문제였다. 운동장에서만 연습하는 것은 대회 코스에 비하면 너무 쉽기 때문에 문제이기도 했다.
9.3km를 달린 코스는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왕복하는 도심 달리기였다. 도심을 뛰니 지나다니는 차들도, 건물들도, 조명도, 간판도 모두 활기차서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고 초보에게 더 좋았던 점은 중간에 만나는 횡단보도에서 그것을 핑계로 숨을 고를 수 있어서였다.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가 궁금한 차량행렬 옆으로 달리면 멋있는 야경이 나타나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다 보면 다음 신호를 따라잡고 싶은 마음에 반강제성 인터벌트레이닝이 된다. 힘들다 싶으면 속도를 늦춰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는 명목하에 횡단보도에서 땀을 닦으며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의외로 오르막이 많고도 길었다, 달리지 않았다면 경사를 몰랐을 텐데 밟아보니 알게 된 오르막이었다. 오르막에서 자세를 낮추고 발로 지면을 밀어내듯 러닝 훈련을 할 수 있어 좋지만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 오르막은 아직은 피하고만 싶은 구간이다. 자꾸만 팔을 흔드는 각도가 커지고 어깨가 들썩거린다.
도심을 달릴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교통사고 나기 십상이다. 드라이브스루, 주유소, 횡단보도 초입과 진출로는 달려드는 차량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자외선 때문에 낮에 달리지 않고 야간에 달리는 우리 부부는 러닝 복장에 적어도 한 가지씩은 흰색을 입는다. 사고 위험 때문에 팔이나 허리, 다리에 야광밴드를 착장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폭신한 러닝 트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스팔트라도 오르막이 적고 지루하지 않은 코스를 찾는 게 시급했다. 호수공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트랙을 따라 한 바퀴를 도니 딱 5km가 나왔다. 급경사도 없고 자전거들이 알아서 피해 가니 안전하기도 했다. 대회 전까지 10km 훈련 장소는 이곳으로 정하고 달려보았다.
편의점, MBC, 아쿠아리움, 조명을 받아 벚꽃 핀 벚나무처럼 보이는 자작나무 숲, 색소폰 연주자가 있는 다리 아래, 오르막이 심한 경사를 지나 러너들이 몸을 푸는 다리를 거쳐 광장에 진입하면 한 바퀴가 끝나는 이 5km의 풍경이 꽤 괜찮았다. 한 바퀴를 뛰고 편의점에서 게토레이 제로를 사서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한 바퀴를 뛰었다. 한 바퀴를 채우면 나타나는 편의점은 이 달리기 코스의 오아시스다. 땀 흘리며 헉헉거리는, 내 손에 든 게토레이 제로를 친절히 계산해 주시는 점원도 있으니 이 코스는 거의 최상급이다.
거리: 10km
시간: 1시간 6분
페이스: 6분 38초
이걸 성취감이라고 하나. 제대로 된 10km를 처음 뛰어 본 후 자아도취에 빠졌다.
나와 함께 10km에 도전했던 남편은 무릎 통증으로 8km에서 멈췄고 이후 1주 정도를 아예 뛰지 못했다.
아파트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둔치에서 가끔 나타나는 너구리와 풀숲에서 노상방뇨하시는 아저씨를 빼면 꽤 괜찮은 코스였다. 지금까지 주로 달려본 코스는 네 가지이다.
-학교 운동장(열려있는 날이 드물고 지루하다.)
-호수공원(그곳까지 차를 가져가야 한다.)
-동네 한 바퀴(너구리와 노상방뇨 아저씨 ㅜㅜ)
-근린공원(코스가 짧아서 목표 거리를 채우려면 많이 돌아야 한다. 강아지가 너무 많다.)
꽤 괜찮은 풍경의 호수공원도 두 번을 뛰니 코스가 눈에 익어 새로운 코스가 필요했다.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을 골라 듣듯, 초모 러너의 달리기 코스도 여러 구역이 필요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러닝어플에 사용자들이 만들어 공유한 코스들이 있는데, 다들 숙련된 전문가인지 오르막이 많이 있어서 그것을 그대로 달리기에는 벅찼다. 나만의 코스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무릎이 안 좋은 남편에게는 평지가 필요했다.
'여기가 달리기 딱 좋은 곳이네.'라고 떠올릴 만한 코스는 어디일까. 계속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