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넘었고 이제 대회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호송차 탑승만 피하자'를 목표로 비 오는 날과 발가락 통증이 심한 날만 빼고 거의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한 결과 5km는 가뿐하다. 10km도 6분대 페이스를 유지하며 문제없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편의 무릎이 이렇게 안 좋은 줄은 러닝을 하고 알았다. 맨 처음 집 앞 공원에서 함께 2km를 달리고 난 후 정형외과에 주사를 맞으러 갔었고 1주일 간 강제 휴식을 취하며 빨리 걷기로 대체했었는데, 괜찮은 것 같다며 내가 10km를 뛸 때 7km를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2주 넘게 또다시 휴식기를 갖고 있다.
일주일이 두세 번 200km 이상을 운전하는 남편의 스케줄, 술과 야식으로 배가 나와있고 인바디를 측정하면 8kg을 감량해서 표준 체중을 유지하라는 값이 나온다. 그리고 과거, 복싱을 배울 때 체력 훈련을 하면서 무릎을 다쳤었는데, 그게 아직 완치되지 않은 듯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지나쳐왔던 사실이라 아내로서 더 안타까웠다. 매일 바쁘게 사느라, 사실 각자 맡은 일만 하며 한 집에 같이 살기만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 마음속 얘기도 생략하고 살다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은 이제야 함께 달리며 애착을 키우고 있었던 시기라 더욱 지켜보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도 달리기 연습과 빨리 걷기로 감량해야 할 체중의 반을 달성하고 난 남편은 몸이 가벼워졌다. 옆 거울로 보면 배불뚝이였는데 가슴에서부터 배까지 깎아내린 듯 직선이 되었다. 문제는 무릎인데 통증을 이겨내고 연습을 하기보다는 대회까지 연습을 안 하더라도 무릎을 지켜서 당일에 함께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설마 나 혼자 뛰는 거 아니지? 나 러닝메이트 구해야 하는 거 아니지? 그러니까 지금 무리해서 달리지 말자.' 고집 센 남편이 동의했다.
남편이 달리기 연습 대신 헬스장으로 향했던 날, 우리 아파트를 끼고 있는 대로변을 따라 크게 두 바퀴를 도는 코스로 혼자 뛰었다. 출근길이라 익숙해도 발을 직접 디뎌본 것은 처음이라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할 무렵, 보기에는 평지처럼 보였는데 앞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었다. 굴곡진 길, 내리막 길, 직접 발이 닿기 전에는 몰랐다. 오르막은 상체를 낮추고 발과 바닥의 마찰력을 이용해 속도를 더 냈다. 오르막이 끝나는 평지에서는 기존 페이스를 되찾아 숨을 고르고 내리막에서는 배에 더 힘을 줘 고관절에 무리가 없도록 사뿐히 리듬감 있게 달렸다.
그렇지, 오르막이라고 피할 수 없고 힘 들이지 않고 쉽게 달릴 수 있는 내리막만 택할 수 없지.
내 발이 닿는 곳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모르고 디디고 살아왔다. 남편의 무릎이 아픈 건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였는데 지나치고 살았다.
-알면서도 지나쳐왔던
-알았으면 지나치지 말았어야 했던
-그러니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만져줘야 하는 남편의 아픈 곳
남자들이 흔히 한다는 골프, 낚시, 축구, 야구, 수영, 자전거 같은 취미가 없는 남편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만 해 왔다. 고작 혼자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헬스뿐이다. 같이 달리기 시작한 이후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겨서 좋아하던 남편은 이마저도 아파서 마음껏 달리지 못하고 있다. 측은해진다.
무릎 말고 다른 곳은 어떤지 지긋이 바라봐야겠다, 내 남편의 아픈 곳과 손길이 필요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