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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좋은 이유

by 마이분더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두근두근 설레인다. 잠깐 동안 아주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삶의 모습이 있다. 일단은 가족 모두 건강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내 글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자연스럽게 책을 출판하고, 어쩌다 보니 그 책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져서 10년 전 내가 퇴사하던 날 꿈꾸었던 해외에서 브런치 먹으며 일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이러한 상상들은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종의 긍정 확언 같은 것이 되었다.


나에게 설레임을 안겨주는 것이 또 한가지 있다. 바로최애 소장품 이어팟이다. 금지옥엽 사라질세라 방금 귓구멍에 꽂아 두고도 잘 있나 두세 번을 더 확인하며 더 세게 귓구멍에 쑤셔 넣는다. 청소를 할 때도 장을 볼 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귓속에서 설레임을 전해주고 있다.


나는 음악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카세트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나만의 앨범을 만들었고, MP3가 나올 즈음에도 좋아하는 노래만 신중히 골라 출퇴근 길에도산책길에도 들고 다녔다. 그 때문에 내 귓가에는 언제나 음악이 감돌았다. 그렇게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특히 만원 지하철을 타고 앞, 뒤 사람에게 끼어 옴짝달싹 못 할 때 내 귓가에만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으면 사방으로 칸막이가 둘러싸인 독서실처럼 아늑했었다.


지금도 그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때의 음악들을 다시 들으면 어느새 10대의 나로, 20대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음악은, 나의 모든 시절을 소환해 준다. 요즘 나는, 가끔씩 넘쳐나는 감정들로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9와 숫자들의 <평정심>을 듣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정밀아의 <꽃>을 듣는다. <꽃>에서는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다”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직장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전업주부로 사는 삶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 전신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안 본 눈을 사고 싶어 진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쩔 수 없이 마주친 못난 내 모습에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노랫말은 언제나 꽃피던 시절의 나로 다시 피어오르게 해 준다.


토요일인 오늘은 오전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줄넘기특강에 가는 날이다. 그 사이 나는 지난 일주일간 미뤄둔 책을 읽고 밀린 일기를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녁형 인간의 삶은 아침에는 여지없이 침대 속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30분만 더자고 일어나야지 했었는데 눈을 떠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단전부터 올라오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일단은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으로 세수를 하며 잠을 날렸다. 곧이어 남편과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냉큼 발바닥에 밟히는 머리카락을 없애고 생선을 구우며 분주히 움직이는 척하고 있었다. 딱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왠지 남편과 아이가 나간 사이 나도 무언가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흘러가버린 오전 시간이 너무 아까워 커피로 후회의 쓴맛을 넘겼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결혼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은 나의 생체 리듬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이놈의 아침 체력은 아무래도 신의 영역인 듯하다. 곧이어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과 아이가 돌아왔다. 생선 냄새로 가득 찬 집안을 환기시키는 동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나에게 차가운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좀 전의 상상과 귓가의 음악처럼 따스한 봄 이었다.


보름 뒤면 수능일이다.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겨울은 봄이 오는 차례를 기다리는 계절이 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인생의 계절에도 다음 차례는
봄이 오는 것 같다.



삶에서 겨울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나를 설레게 만드는 상상들은 겨울이 지나면 봄처럼 찾아올 것이다. 내 나이 즈음 글쓰기를 시작하셨다는 박완서 작가님의 문장처럼 "올 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 의한 약속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_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中


차가운 겨울 뒤에 따스한 ‘봄’이 찾아오는 것은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삶에 겨울이 찾아올지라도 모두에게 ‘봄’은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그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가 품고 있는 꿈같은 삶도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나 역시 오늘 이불속에서 놓쳐 버린 아침을밤의 시간으로 채워나가며 내 삶의 봄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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