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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에 남이 되어버린 사람과 마주쳤을 때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

by 마이분더








만원 지하철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앉는 것처럼, 적색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뀔 때처럼 살다 보면 좋은 날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동네언니와의 만남도 그랬다. 가족보다 자주 만나고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동네 사는 이웃이면서 동시에 언니가 없는 나에게는 친언니처럼 느껴지던 사람이었다. 아이끼리도 갓 걷기 시작할 때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아이도 나도 두 모자에게 꽤 많은 정을 쏟았었다.


삼시 세끼 밥만 차리다 끝나버린 주말 뒤에 평일이 찾아오면, 카페에 앉아 남편 험담을 늘어놓기도 하고 육아에 대한 고충도 털어놨었다. 아이 친구 엄마이기도 한 언니와의 만남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날이었다. 아이끼리는 같은 태권도 학원에도 다녔다. 작은 체구에 겁쟁이인 아이는 태권도장에 울려 퍼지는우렁찬 기합 소리에 처음에는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두려워했지만, 친구와 함께였기에 용기를 냈었다. 그리고 그 놈에 코로나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래저래 맘이 편치 않던 한낮이었다. 여느 때처럼 태권도장에 갔는데 아이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당연스레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언니가 아닌 것 같은 답변이었다. 일언반구 한 마디상의도 없이 시간을 바꿨다고 했고, 불현듯 태권도장에서 혼자가 돼버린 아이의 긴장된 모습에 내 감정도 싸늘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사이에도 긴장감이감돌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을 바꾸는 것을 미리 상의하는 일이 언니에게 의무는 아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 우리가 나눴던 깊은 대화만큼 서운함이 깊어졌고 나는 최대한 감정을 가다듬고 카톡을 보내며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걸 서운하네!”라는 짧은 한 줄로 긴 마음을 대신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답장으로 돌아온 장문의 카톡에는 이런저런 아이들끼리의 서운함과 나는 알지 못했던 언니의 속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장문의 카톡을 보내놓고 내가 보낸 답장에는 답변도 없이, 그 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다음날 선생님께도 물었지만 아이들끼리는 잘 지낸다는 답변 뿐,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자세한 연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아이끼리도 엄마들끼리도 그동안 쌓여있던 서운한 감정들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린 것 같았다.서운한 공기로 가득 찬 풍선이 갑자기 터져버린 소리에 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불가근불가원’의 섭리를 비켜간 탓일까 도대체 어떠한 연유로 우리는 멀어진 것일까. 좋은 게 좋은 거라여기며 넘겼던 수많은 순간들이 나에게도 언니에게도 알 수 없는 서운함을 안긴 채 둘 사이를 갈라놓아 버린것 같았다.


이제는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지만, 언니와 나는 아직 한동네에 산다. 그리고 마트를 다녀오던 길목에서 우연히 언니를 마주쳤다. 처음 태권도장에서 아이가 친구와 함께였기에 낼 수 있었던 용기처럼 나도 언니여서 좋았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용기 내어 말했다. “안녕?”


그래도 긴 세월 쌓아온 인연에 대한 예의로 마주치면 인사했지만 상대는 보란 듯이 외면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나도 외면에 대한 답례를 해야 했다. 그후로 우리는 남이 되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을 마주하고 보니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번쯤은 인관관계로부터 상처, 배신, 서운함, 억울함 같은 참을 수 없이 불편한 감정들을 겪게된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제일 애틋하고 안쓰러워진다.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때로는 상대의 최선이 내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나와의 이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라고 해서 친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설사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상대가 당연히 나를 위한 선택을, 나를 위한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 것은 선善이 아니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 선택을 했을 때 상처를 받고 상대와 멀어진다.어쨌든 상대와 나는 한 사람이 아닌 각자 서로 다른 주체다. 그 상황에서 그 선택을 한 것은 상대의 몫이고 상대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선택이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였다면 그 순간 나도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상대방과의 인연을 이어나갈 것인지, 끊을 것인지 말이다.


연유야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용기 내어 인사를 건넸을 때 상대로부터 외면을 당했을 때처럼, 나의 노력과 별개로 이별을 해야 한다면 이는 상대와의 인연이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랬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은 결국 변하고 떠나가는 것이 순리라고 말이다.


나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인 사람은 어떠한 연유로든 떠나간다. 떠나가는 사람은 흘려보내는 것이 순리이고 진리인 것이다. 그리고 인연이 끝나는 순간부터 상대방은 남이다.



시절 인연이었던 상대와 멀어지는 순간부터 내 마음에 내려앉았던 돌덩이는 이제 거센 물살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나를 더 좋은 세상으로 데려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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