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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시간에 남은 유통기한

아이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by 마이분더








나에게 육아는 다시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어렸을 때 엄마의 말투가 왜 맨날 신경질적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육아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흘러가는 시간만큼 천천히 번뇌가 쌓여간다. 딱히 할 일 없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알람이 울리고 마음이 바빠진다.


오전 8시 눈을 뜨고 오후 2시면 아이를 하원 시키고 이후부터는 이리저리 학원 픽업을 다닌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저녁밥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수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나는 생기를 잃어갔다. 특히 최근까지 그놈의 시국은 누군가와의 만남도 맘이 편치 않은 날들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혼자 공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하고 세계를 누비는 점점 비현실적인 막연한 꿈을 그리면서 내 삶에 짜증만 늘어갔다. 타인만을 위하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했다.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얼마 전 우리 가족에게도 그 노무 코로나가 찾아왔었다. 아이의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날 문득 엄마의 전기장판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늘 전기장판을 2단계로 높이고 이불을 덮어 주셨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면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과 엄마표 수제 돈가스를 튀겨주었다. 이날처럼 나는 아이를 키우는 모든 순간마다 엄마가 떠오른다.


얼마 전 아이가 뜬금없이 자기는 발명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기 때로 돌아가면 걷다가 다리가 아플 때 엄마에게 안길 수 있고 스스로 숟가락을 들지 않아도 밥을 먹여준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를 안 하고 매일 놀아도 된다며 쉴 새 없이 많은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그 순간 나는 ‘공부도 안 하고’ 에만 감정이입이 되어 퉁명스러운 잔소리로 나무랐었다.


아이는 그날 저녁에도 그다음 날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백 살이 돼도 엄마 얼굴은 그대로인 거 맞지?”, “내 나이가 늘어나면 엄마 나이도 늘어나잖아. 그러면 할머니로 변해서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해?” 라며 자신은 아직 혼자 있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를 그토록 늘어놓았던 이유가 바로 ‘엄마가 죽을까 봐’ 였던 것이다.


언제부터 알게 된 것일까. 엄마와의 시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엄마 품에서 내려와 두 발로 첫발을 내디디던 그때였을까? 아니면 혼자서 숟가락도 잡지 못했을 때 스스로 첫술을 떠야 했던 어린이집 점심시간? 생각해보니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낯선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도, 내가 없는 모든 순간마다 혼자서 용기를 내느라 젖 먹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갑자기 뜨끈해지는 눈을 비비며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두 번째 세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제야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두 번째 세상에서는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라고 물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는 아이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나도, 엄마와의 시간에 남은 유통기한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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