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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오해였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얕거나 깊은 오해가 있다.

by 마이분더








모든 것이 오해였다. 어렸을 적 엄마는 동생만 예뻐한다는 오해도, 아빠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보다 돈이라 여겼던 마음도.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 첫사랑의 연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슬픔까지 전부 오해였다. MSG를 조금 보태더라도 우리의 하루가 아무런 오해 없이 저물었던 적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여름 한낮이었다.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나는 방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놀러 오신 옆집 아주머니와 미풍 바람의 선풍기를 틀고 귤껍질을 벗기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두 분은 소곤소곤 속삭였지만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듯 두 분의 대화 소리는 선명했다. 귓속말이 원래 더 잘 들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대화 소리의 볼륨이 점점 줄어들 무렵 내 귀를 쫑긋 세우는 내 이름이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내리사랑이라더니 00보다 둘째한테 더 정이가'라고 말했다. 속삭이는 대화가 오고 가던 중이었지만 마치 멍 때리고 길을 걷다가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툭치며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엄마의 마음에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만 유독 퉁명스럽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엄마는 동생만 예뻐한다고 생각하며뾰루퉁한 마음으로 자라왔지만 자식을 낳아보니 알것 같았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면 아이를 마냥 예뻐할 수 있는 여유보다 너무 예뻐서 노심초사하는,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는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게 두려웠다. 아이가 처음으로 열이 났을 때, 발버둥 치는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야할 때,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을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고,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지금 까지. 여전히 나는 처음 겪는 모든 것들이 두렵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진다. 나에게 둘째가 있다면 아마 나도 그 시절 친정 엄마처럼 말할 것 같았다. 초행길은 언제나 두렵지만 두 번 째부터는 길가에 핀 꽃과 나무, 지나가는 작은 개미들까지. 예쁜 것들은 그제서야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는 예쁜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전한다. 미리 사둔 예쁜 옷,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하는 손자의 옷 까지.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처음은 애잔하고애틋해서 가장 소중하다.


얼마 전에는 친한 친구를 만났다. 일 년 만이었다. 오랜 시간 친구를 못만나는 동안, 어떤 날은 친구의 마음이 멀어졌다고 여겼었다. 그날은 내 생일날이었고 아침에는 친정엄마와 동생을 만나 밥을 먹고 저녁에는 남편과 아이의 생일 축하송을 들었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금일봉까지 전달받은 충만한 하루였지만 희한하게 허전했다. 친구에게 딱히 무엇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왁자지껄 떠들던 수다스러운 지난날들이 그저 없어진 선물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친구는 워킹맘으로 매일을 전쟁터처럼 보내고, 분명히오늘도 아침을 거르고 액셀을 밟으며 계속해서 달려야만 하는 하루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문자 한 통 못 보내나, 전화 한 통이 뭐 그리 오래 걸린다고'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나를 향한 친구의 마음을 오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오해들이 어느 순간 사실처럼 믿어질 때 모든 인연은 끝이 난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날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고 친구와의 오해는 매번 마지노선을 넘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일 년 만에 만난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 힘겹다고 느껴진지도 몇 해나 흘렀고, 그래서 더욱 보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얼마 전 빌려본 산문집을 빌어 아직까지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마음을 전해본다. “비로소 나는 너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어. 그렇더라고 우정은 자발성과 해방의 성격을 지니니까.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中 에서"


결혼생활 중에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불현듯 터저나 온 퉁명스러운 말투는, 서로에게 쓸데없는 오해들을 불러일으키고 날 선 감정들이 한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어쨌거나 우린 모두 서로에게 얕거나 깊은 오해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오해들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오해의 불씨들은 대부분 상대방과의 대화를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서로의 깊이를 더해줄 때가 많았다. 대화는 하찮은 오해들을 풀어주고 신뢰는 한층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건조해져 가는 삶 속에서, 때로는 작은 오해들이 식어가는 서로에게 잠시나마 촉촉한 말들을 건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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