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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야 네 전화는 기다리지 않으마

오늘도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y 마이분더









나는 아무래도 콜포비아에 걸린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전화로 배달 주문이 두려워 매번 동생에게 부탁했었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전화 업무가 긴장돼서 일부러 야근을 자처해 홀로 남아 전화를 걸었다. 급기야 소개팅을 하고 난 뒤에도 상대방의 전화가 걸려오면 절대로 받지 않았다. 아니 문자보다 전화를 먼저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내심기를 건드릴 때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왠지 백마 탄 왕자님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든다.


아무튼 나의 연애사는 언제나 문자가 먼저였다. 이런 나에게 카톡이라는 신문물이 나타난 것은 선물이었고,여전히 카톡은 사십이된 지금까지 내 삶의 보호막이 되어 주고 있다. 그리고 문자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글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글로 주고받는 대화는 진솔했고 언제나 위로였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대화가 불편했던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도 나는 말 대신 편지를 썼다. 모두가 잠든 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적고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글씨는 흘림체가 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빠가 볼 수 있는곳에 고이 접어두고는 아빠가 진짜로 읽었을까 봐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녔다. 어느 날 아빠가 편지를읽고 난 날이면 길고 긴 연설을 들어야 했던 아찔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빠도 편지로 답장을 했었더라면 지금쯤 아빠와 나는 아마도 지금보다는조금 더 친했을지도 모른다.


옛날 일을 떠올리니 얼마 전 소환된 싸이월드 다이어리도 생각난다. 싸이월드가 열리고 나는 사진첩보다 다이어리를 먼저 열어보았다. 그 시절 다이어리에 댓글을 달아 둔 친구들은 나와 꽤나 가까운 사이였는데 지금은 옆에 있어도 못 알아볼 만큼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댓글에는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적혀있는데 그 후로 우리는 남이 되었고 무색한 세월은 예고도 없이 싸이월드에서 인스타로 넘어가버렸다. 문득 싸이월드 친구들이 보고 싶은 밤이다. 살면서 지금이 영원할 줄만 알았던 모든 것들은 어느새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나저나 기나긴 글의 대화를 좋아하던 내가 어째서 ‘응’ 아니면 ‘아니’ 로만 답장을 보내는 남편과 결혼에 골인한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일생일대의 불가사의다.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해답은 다음 생으로 넘기고 누군가 결혼생활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단연코 전화라고 답하고 싶다.


결혼 첫해에는 이틀만 지나도 시어머니가 전화통화에서 ‘오랜만이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아니 48시간이그렇게 오랜만이란 말인가? 더욱이 시부모님과는 가까이 살아서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지냈다. 전화가 잦아질수록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남편에게 말했다. 전화 안부는 셀프 효도로 대신하자고, 나는친정 아빠와도 연중행사로만 통화하고 살았고(친정 엄마와는 매일 통화한다), 남편도 우리 부모님께 전화로 안부를 묻는 건 솔직히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렇게 결혼 첫해부터 우리 부부에 수화기 너머의 효도는 셀프로 진행되었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도 서운한 마음을 나에게 표현하지 않으셨고, 전화통화의 압박이 사라진 후부터는 시부모님을 향한 심리적 거리감도 사라졌다. 그러던 오늘 갑자기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망설이다가 전화벨이 끊기고 곧이어 카톡이 와있었다. 분명히 남편에게 엊그제 안부전화를 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카톡에는 '너희들 잘 지내냐?"라고 적혀있었다. 갑자기 심리적 거리감이 고무줄처럼저 멀리 늘어나 버렸다. 나는 답장으로 '네 어머니, 엊그제 통화했다고 남편에게 들었어요. 잘 지내고 계신다니 다행이에요. 날이 추워졌으니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전했다. 분명히 1은 사라졌는데 그 후로 어머님은답장을 하지 않으셨다.


물론 살가운 며느리의 안부전화를 바라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어머님께 전하고 싶다. '어머님 결혼 전에 말씀 못 드린게 있는데요. 실은 제가 콜 포비아에 걸렸습니다. 안부전화는 아들 목소리로만 가능한 아주 고약한 병이라고요!'


얼마 전 아이에게 전화기가 생겼다. 다행히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매일같이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며 안부를 전한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날 닮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중에 커서 나한테도 자주 전화하겠지?


그나저나 며느라기야 네 전화는 기다리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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