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Quiz ?
평소처럼 아이 이름을 불렀다. 희한하게 내가 듣던 내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상하게 이곳 저곳 몸이 쑤시기 시작한 것도 그날 밤부터였다. 특히 손목과 날개뼈통증이 심했다. 몸져누워 잠이 들고 아침이 밝았다. 괜찮겠거니 했지만 오후부터는 눈을 깜빡일때마다 열감이 느껴졌다. 석양처럼 붉게물든 체온계는 삼십팔도를 가르켰다. 한동안 잊고 지냈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코로나 자가키트를 꺼내들었다. 역시나 코로나였다. 다음날 한 달 전부터 예약하고 고대하며 기다리던 강연이 있었고 이날을 위해 일부러 남편 근무까지 빼놓고 기다렸는데. 몸이 아파서라기보다 아쉬움에 온몸에기운이 빠졌다. 그날로 나는 나홀로 방에 갇혀 그토록 원하던 혼자만의 시간을 하필이면 원하지 않는 시기에 누리게 되었다.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깼다. 코로나 2일차 아침이었다. ‘외할머니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데’ 이른 새벽 장모님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나를 깨웠다. 아침나절에는 보나마나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은 딸 대신 남편에게 먼저 연락이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이쩐단말인가. 엄마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어제 코로나 걸렸는데 어떻해“ 엄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고 “일단 몸 잘 챙기고 있어”라고 전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던 외할머니셨기에 엄마는 긴긴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부랴부랴 짐을챙겨 남편은 아이만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는 다른 방도 없이 텅빈 집에 남아 비어있는 마음 위로 차곡차곡 무거운 짐이 쌓여가는 것을 느꼈다. 그나저나 도착 할 시간이 한참지나도 소식이 없어 걱정하고 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주말인지라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겨우 목적지에 다다랐는데아이가 갑자기 뒤에서 또 멀미로 토를 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차를 세우고 뒷처리를 하느라 이제야 도착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로부터 두 세시간이 흘렀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 히 차분했고, 아이는 먼저 도착한 친척형이랑 잘 놀고 있으며 남편은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뒤이어 남편이 보내온 카톡에는 엄마는 몇 차례 울다가 멈추길 반복했다고 씌여있었다. 반복이라는 단어는 슬프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모든 반복 뒤에는 반드시 나아짐이 있다고 믿는다.
해가지고 여전히 홀로 남은 집에 누워 점점 더 뜨거워지는 몸과 근육통을 느끼며 쉴새없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슬픔은 어느새 슬퍼해야한다는 노력으로뒤바뀌고 있었다. 2박3일 혼자있게 된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모처럼 고요한 자유앞에 죄책감스럽게도 옅어지고 있었다.
형, 가족 누가 죽으면 얼마큼이 진짜슬픔이고
얼마큼은 슬퍼해야 한다는 무의식일까
얼마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현했던 방시혁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가족의 죽음앞에 나의 슬픔은 얼마큼이 진짜 슬픔이고 얼마큼이 슬퍼해야한다는 무의식일까. 뜨끔하면서 공감이 되었다.
사실 나에게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그리 깊게 남아있지않다. 유년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로 내려가 하루 이틀 자고왔던 기억, 어찌보면 할머니와의 추억이라기보다 시골집, 공간에 대한 추억이 더 깊게 남아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외할머니와의 대화라던가, 손을 잡고 걸어가거나,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거나. 그런 정서적인 교류들은 떠올려보려 했으나 잘 기억나지 않았다.그래도 할머니의 된장, 직접 짠 들기름. 달콤한 복숭아통조림 맛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나저나 진짜슬픔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아마도 현실에 존재했던 어느 날, 어느새 쌓여버린 둘 만의 은밀한 추억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