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자오밍은 함곡관 매표소에서 일한다. 입장료는 75위안이다. 약 2시간 코스로 먼저 정문에서 사진을 찍고 관루에 오른다. 경사진 관도를 따라 오르면 노자가 <도덕경>을 남겼다는 태초궁이다. 비림 전시관에서 비석과 밀랍 인형을 보고(에어컨이 있어 여름에는 필수다) 전망대에 올라 황하와 근처 경치를 조망하고 내려오면 끝이다. 그렇게 일하고 한 달에 3천5백 위안을 받는다(한화 74만 원). 다행히 숙식 포함이다. 밤에는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봤다. 스물아홉 나이에 이만한 직장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요만한 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밤 11시에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 제한 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서둘러 나가 보니 한 노인이 망루에 서있다. 낮에 돌아다니다 손녀의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찾아달라고 한다. 이 넓은 부지를 한밤중에 찾기는 불가능하다. 날이 밝으면 도와드린다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할 수 없이 노인을 숙직실에 모시고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관람 코스의 맨 끝, 전망대에 가서야 발견했다. 바닥을 살피며 걷느라 3시간이 걸렸다. 노인은 짧게 인사하고는 3명의 손님이 찾아올 거라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첫 번째 손님은 다음 날 오후 4시에 왔다. 스스로를 맹상군이라고 했다. 주위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식객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는 그 맹상군이냐고 묻자 맞다고 한다. 그는 인맥관리의 덧없음을 토로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걸 그랬다면서도 함곡관을 탈출하기 위해 통행증을 위조한 장소와 닭울음 소리를 흉내 낸 위치를 알려줬다.
두 번째 손님은 아침 9시부터 왔다. 입장객을 받는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이름은 영정으로 요즘 툭하면 어린 시절의 상처 얘기를 하는데 자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어려서는 이웃 나라에 인질로 잡혀 갖은 구박을 받고, 어머니는 색녀로 소문나 얼굴을 들기 어려웠으며, 눈에 가시 같은 재상 여불위는 친부라고 하니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다고 했다. 다만 함곡관이 합종군에 의해 함락 위기에 몰렸을 때, 천하통일의 사자후를 외쳤던 일만은 지금도 뜨겁게 기억한다고 했다.
세 번째 손님은 저녁 5시 45분에 왔다. 곧 퇴근시간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주로 와이프에 대한 불평이다. 항우와 힘들게 싸워 나라를 세웠더니만 외척이란 외척은 죄다 데려와 유씨의 나라인지, 여씨의 나라인지 알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특히 한신을 건드리지 말자고 했는데 기어코 사단을 내서 자기를 속 좁은 인간으로 만들었다며 길길이 뛰었다. 그래도 항우에게 함곡관을 양보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석 달 후에 린자오밍은 휴가를 냈다. 백마용, 만리장성, 자금성을 찾아 매표소 직원을 만났다. 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어 아예 휴직계를 냈다. 두보초당, 장가계, 소림사 앞의 3성급 호텔을 둘러보고 택시 기사와 얘기를 나눴다. 대다수 여행객들은 낯선 도시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단체 여행이 편하지만 비싸고 스케줄에 쫓긴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숙소와 교통편만을 연결하는 여행사다. 현지 가이드가 공항에서 숙소까지 안내하고 관광지나 다른 도시와의 버스표 등을 예매해 준다. 고정 직원을 두지 않고 알바생으로 충분하다. 사업 계획을 설명할 때는 맹상군처럼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사이를 넘나들었다. 업체 협약을 맺으면서 유방이 그랬듯 고개를 숙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서른일곱이다. 지금은 간신히 적자를 면하고 있지만, 그녀 가슴에는 진시황에게 들은 대륙 평정의 두근거림이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