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회담이 한참이던 1953년 6월 18일, 전국 각지의 수용소에서 전쟁 포로들이 도망쳤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고 1950년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은 정부를 선택하기보다 갑작스레 어느 한 편이 되었다. 남쪽에 남고 싶어 하는 포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이승만은 제네바 협약을 어기고 국군을 동원해 수용소의 철조망을 끊었다. 그렇게 UN 군과 교전까지 벌이며 탈출한 인원이 2만 6천여 명.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자다가 놀라 깨기는 이 때가 유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은 많지 않다. 최인훈의 <광장>이 있고 다른 하나가 서울이 보고 있는 김용준의 <유월에서 팔월 사이>다.
연락이 왔을 때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 탈출한 반공포로가 동네 처녀와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였다. 그녀는 국제 협력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만났다. 한 달간의 합숙 교육을 마치고 그녀는 방글라데시로, 서울은 에티오피아로 파견되었다. 그렇게 짧은 인연이 에티오피아의 어느 저녁에 서울의 숙소 앞에 나타났다. 2년 근무에 한 번 주어지는 휴가로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에티오피아에 온 것이다. 볼 것 없고 불편하다고 여겼던 아디스아바바 구석구석을 그녀와 쏘다녔다.
3일 동안 낮엔 회사에 나가고 밤은 장례식장에서 보냈다. 그녀의 부모님과 언니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책을 가져갔다.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밤이 너무 길었다. 연락을 이어가던 그녀가 중도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파견이 끝나기 몇 달 전이다. 서울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짧게 자른 머리를 모자로 가린 것 외에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구토를 하며 쓰러졌던 일을 다리를 접질린 것 마냥 무심히 말했다. 항암 치료 대신 민간요법을 택했고 야트막한 산이니마 부지런히 다녔다.
발인을 앞둔 마지막 날, 자정 무렵에 젊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외투도 벗지 않고 그녀의 영정 사진 앞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예전 남자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외국 근무를 두고서 크게 싸웠다고 했다. 뒤쪽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서울은 앞으로 나가 나란히 앉았다. 그가 가장 오래 사귄 연일일지 몰라도 자기는 마지막을 함께했다. 장례 미사를 마치고 그녀의 어머니가 서울에게 운구를 부탁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나서 서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자 인형의 수염을 없애달라는 바이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갈퀴를 없앤 사자를 보냈다. 몇 달을 기웃거리다 다시 취직한 회사는 영국 근무를 제안했다. 서울은 그녀의 집에 인사를 남겼다. 치과 의사였던 언니가 꼭 한번 들리라고 했다. 충무로의 낡은 건물이다. 아직 외벽에 간판조차 달지 않았다. 난생처음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누워있자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20세기의 마지막 더위가 다했다. 8월의 끝무렵이었다.